황당하다고?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질걸!… ‘발명마니아’

입력 2010-06-03 18:19


발명마니아/요네하라 마리/마음산책

신호등을 건널 때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잔여등 표시기는 한 초등학생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작은 생각의 전환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발명. 굳은 생각을 바꾸기는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발명가를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발명마니아’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누구나 발명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상에서 유용한 발명품부터 선입견과 편견을 바꾸는 발명까지 기발한 사고 100편을 들려주며 독자를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일본 인문에세이스트인 저자는 황당할 만큼 엉뚱한 발명품도 천연덕스럽게 선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그의 발명은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의 모순점을 드러내주고 평소 답답하게 느껴온 문제점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찰 위조 차량은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한 발명품이다. 승용차를 경찰차로 위장한다는 발상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도로에서 짜증을 부려본 경험을 떠올린다면 저자의 발상에 공감하게 된다. 경찰차나 응급차는 업무적 필요성 때문에 꽉 막힌 도로에서도 다른 차량의 양해를 구하면서 쏜살같이 질주하기 때문이다.

능청스러운 저자는 경광등과 경찰 차량 무늬를 탈부착하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변신’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알려준다.

적용 가능성이 높은 발명품도 있다. 한겨울에도 손이 시리지 않게 누워서 독서하는 법이다. 겨울에 침대 위에서 독서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이 시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목과 어깨 팔을 덮고 손까지 감싸는 스웨터를 구상했다. 이 스웨터는 손목에 장갑이 붙어 있고 장갑의 손끝은 고무로 코팅돼 있어 책장을 용이하게 넘기도록 돕는다. 독서광들에게는 꽤 쓸만한 물품이 아닐까.

일명 ‘TV 화면발’을 살리는 ‘텔레비제닉 필터’는 예뻐보이고 싶은 욕망을 겨냥한다. 통상적으로 TV는 실물보다 퍼지게 비춰서 웬만큼 미모가 빼어나지 않으면 예뻐 보이기가 어렵다. 때문에 저자는 카메라 사이에 얼굴을 작게 하고 눈은 크게 하는 특수 필름을 삽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시청자 앞에는 한층 매력적인 얼굴로 나올 수 있고, 연예인들도 성형 수술을 덜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텔레비제닉 필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의 관심은 개인의 일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 평화, 환경 보존 등 거시적이고 공동체적인 문제에도 촉수가 뻗는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 유해 가스를 내뿜는 교통수단으로 인한 공기오염이 심각하다. 요네하라 마리는 천연덕스럽게 공기 오염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운송 수단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낮과 야간에 지하철을 비롯한 철로를 화물 수송에 사용한다는 생각이다. 이로 인해 철도 회사의 수익은 증대되고 배기가스와 자동차 소음도 감소되니 일석이조 아니냐고 반문한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가. 저자는 인류의 역사가 결코 풀지 못하고 있는 ‘평화’라는 숙제도 거침없이 해결한다. 바로 모든 나라를 일제히 미국에 합병시키는 것이다. 인류 전원이 미국 시민이 되면 미국이 더 이상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이유다.

피식 웃음이 나는 발명에서 미국의 침략 전쟁을 신랄하게 비꼬는 저자의 의중을 알 수 있다. 한 술 더 떠 노벨 평화상을 폐지하고 노벨 자유상을 만들어 조지 부시 미 전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에게 수여하면 되겠다고 빈정댄다.

100편의 발명안은 저자가 손수 그려놓은 삽화까지 더해져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의 아이디어는 실용 가능성보다 상상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 돈이 안 되는 발명안을 왜 들어야 하냐고 반문한다면 저자는 ‘생각하는 데 돈 드냐’고 되묻지 않을까.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