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국민의 선택] 60대 할아버지 “커닝페이퍼 써와 투표하기는 처음”
입력 2010-06-02 18:35
1인 8표제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 2일 전국 각 지역 투표장에서는 복잡한 투표방식 때문에 마음에 정한 후보를 적은 ‘커닝 페이퍼’를 들고 나온 유권자들이 속출했다. 투표용지가 이중 교부되거나 잘못 나눠주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유권자는 8표 가운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광역단체장과 지자체장에게만 투표하고 나머지 투표대상은 아예 투표를 포기하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 인계동 투표장에서 투표한 김상갑(69)씨는 “수십년간 투표를 해봤지만 커닝 페이퍼를 써와 투표한 건 처음”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다른 유권자들도 대부분 자신이 찍고 싶은 후보자를 8명이나 적은 종이를 든 채 기표소로 들어갔다.
경기도 안성에서는 공도읍 제2투표소에서 교육의원 투표용지가 이중 교부돼 유권자들의 항의 사태가 이어졌다. 시의원 비례대표 용지 대신 교육의원 투표용지가 한 장 더 나간 것이다.
경북 포항에서는 한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게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배부받았다며 선관위에 신고했다. 제주에서는 도지사 투표용지가 교부되지 않은 채 투표가 진행돼 유권자 40명이 도지사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도 양평에서는 장애인 시설 원생들이 투표할 때 보호자가 기표소 안까지 동행하는 문제를 두고 시설 관계자와 선관위 간 승강이가 벌어졌다. 시설 관계자들은 원생들이 한글도 잘 모르거나 거동이 불편하다고 항의했지만 선관위 직원들이 “사지가 없거나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면 보호자도 동행할 수 없다”며 막았다.
○…소양호 한가운데 있어 ‘육지 속의 섬’으로 알려진 강원도 춘천 대동리 주민 6명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화천호 한가운데의 화천읍 동촌1리 주민들 역시 배를 타고 투표소까지 나왔으며 충남 대청댐과 충북 충주댐 근처 오지 주민들도 뱃길로 나와 투표했다. 울산 등지에서는 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해 119 구급차가 동원됐다. 울산시 소방본부는 7명의 장애인과 거동 불편자 다수를 구급차에 실어 투표소로 안내했다.
○…전북 익산 모현리 제2투표소에서는 60대 초반의 김모씨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유권자가 미리 투표를 한 데 반발해 항의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다른 유권자가 모현 제3투표소에서 투표해야 했음에도 착각해 자기 대신 투표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김씨는 선관위 관계자들이 확인 후 재투표를 권했지만 화가 난 상태에서 그대로 귀가했다.
○…100세가 넘은 최고령 유권자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장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다. 충북 최고령 유권자인 이권영(103)씨와 대구 최고령 유권자인 권영섭(106)씨는 오전 일찌감치 가족들과 함께 투표소에서 직접 투표했다. 대전 최고령자인 김금홍(111) 할머니도 오전 투표장을 직접 찾아 투표했다. 하지만 강원도 최고령 유권자인 갈순희(113) 할머니와 경기도 내 최고령자인 남궁씨(122·안양) 할머니 등은 부재자 투표로 참정권을 행사했다.
○…구제역 비상이 걸린 충남에서는 지자체들이 도내 투표소 734곳에 손소독기와 발판소독조를 설치하고 구제역 예방 수칙이 적힌 안내문을 유권자들에게 나눠줘 투표장이 마치 구제역 방지 교육장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한바탕 구제역 홍역을 치렀던 충남 청양군은 주요 도로 곳곳마다 차량을 세워놓고 소독하기도 했다.
○…인천의 한 투표소에는 60대 유권자가 장난감 장총을 들고 나타나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오전 7시30분쯤 윤모(69)씨가 길이 1m의 장총을 들고 연희동 제2투표소에 들어서자 다른 유권자가 술 취한 노인이 총을 들고 나타났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알고 보니 거동이 불편한 윤씨가 지팡이용으로 장난감총을 짚고 온 것이었다.
전국종합=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