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국민의 선택] 85년간 호적없이 산 할머니 생애 첫 투표권 행사 감격
입력 2010-06-02 18:35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 2일 서울시내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날씨가 화창해 가족 혹은 친구들과 야외 나들이를 나왔거나 등산을 가는 길에 투표장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투표장을 찾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낮 12시30분쯤 신길동 영등포여고에서 만난 신기철(38·회사원)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동호(10)군과 함께 운동복 차림으로 투표소를 찾았다. 신씨는 “아이가 어른들도 반장선거를 한다며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며 “날씨가 좋아 투표를 마치고 아들과 농구를 하러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20∼30대 젊은이들은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여유롭게 투표했다.
생애 첫 투표를 한 대학생 이정석(21)씨는 “정치나 지방자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천안함 사태를 지켜보면서 윗사람을 잘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자친구에게도 꼭 투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투표 열의도 대단했다. 김갑심(88)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석촌동 석촌초등학교를 찾았다. 길눈이 어두운 김 할머니는 운동장을 헤맨 끝에 투표를 마쳤다. 김 할머니는 ‘힘들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내가 다리는 불편해도 여기(왼쪽 손)는 살아 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85년간 호적 없이 살아온 이경순(86) 할머니도 화사한 진달래색 외투를 차려입고 석관동 석관고교를 찾아 감격스러운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인 중계본동 ‘104마을’ 중턱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는 이응도(92) 할아버지를 비롯한 주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투표를 마쳤다. 지난해부터 자기 집주소를 갖게 된 개포동의 무허가 판자촌 주민 다섯명도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투표했다.
탈북자와 외국인들도 투표 행렬에 동참했다. 미국인 학원 강사인 캐서린 존슨(32·여)씨는 두 살배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남2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한국생활 8년차인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공약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면서 “이 지역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는 사람을 뽑았다”고 말했다.
한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압구정동 동호경로당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정해진 순서와 다르게 교부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서울시선관위원회를 항의 방문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