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투표권 행사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 최유나씨 “다문화 가정에 관심 보인 후보 찍었어요”

입력 2010-06-02 18:55


“저도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더없이 뿌듯합니다.”

2일 오전 8시 남편 최근철(45)씨, 아들 재우(6)군과 함께 대구 봉덕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베트남 출신 가정주부 최유나(27·봉덕3동)씨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흘렀다.

유나씨는 “집으로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살펴본 뒤 나와 같은 처지의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가졌다고 보이는 후보를 마음에 담아와 찍었다”고 말했다.

휴일이지만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투표를 포기하고 일터에 나가기로 했던 남편 근철씨는 “아침 일찍 투표를 한 뒤에 출근해도 되지 않느냐”고 유나씨가 ‘바가지’를 긁는 바람에 투표소에 나왔다고 했다.

근철씨는 “누굴 찍었는지는 말 못하지만 집사람과 함께 의논한 끝에 아들의 미래를 밝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나씨는 한국에서의 첫 투표 소감에 대해 “베트남에서는 중학교 때도 지방선거 투표를 할 수 있어 16세 때 여러 후보 가운데 한 명을 뽑는 투표를 한 적이 있지만 이번 한국 지방선거는 한꺼번에 여러 명을 찍는 방식이라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누구나 무조건 투표를 해야 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경우 공무원들이 집에 들고 오는 투표함에 반드시 표를 넣어야 하는 베트남 방식과 달리 가까운 투표소를 두고도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한국의 선거 분위기는 희한하다고 덧붙였다.

2004년 4월 9일 베트남에서 입국해 그해 대구에 사는 근철씨와 국제결혼을 한 유나씨는 결혼 4년만인 2년 전, 꿈에도 그리던 국적을 취득했고 자신의 예쁜 얼굴이 담긴 주민등록증도 갖게 됐다. 국적을 취득하자마자 주위의 권유로 이름도 ‘민디응옥 디야우’라는 긴 베트남 이름 대신 남편의 성을 딴 한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유나씨는 “2006년 5월 지방선거 때 투표권이 없어 차별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조금 씁쓸했지만 이번에는 기표소 앞에서 주민등록증을 내밀면서 너무 당당한 기분이 들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 시집온 뒤 6년간 인근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교실 등을 부지런히 다녔기 때문에 플래카드나 선거벽보, 공보물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근철씨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시부모 잘 모시고 아이 잘 키우며 이웃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집사람을 보면 누구도 베트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대구=글·사진 김상조 기자 sang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