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전쟁과 평화, 동전의 양면

입력 2010-06-02 17:57


“선거 앞두고 휘몰아친 전쟁위기론, 그러나 평화 원한다면 전쟁을 생각해야”

해마다 6월이면 자욱한 꽃향기 속에 숨은 초연(硝煙) 내음을 맡는다. 물론 집단 무의식에 깊은 상흔으로 남겨진 6·25 탓이다. 요즘 많은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6·25를 모른다지만 6·25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원칙적으로 아직도 정전상태여서만이 아니다. 실제로 수십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북한의 공격으로 죽어나간다. 그래서 6월(June)은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주노(Juno)가 아닌 ‘마르스(Mars)의 달’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는 ‘걷히지 않은 전쟁의 그늘’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애써 감추려는 세력이 판쳐 왔다. 또 다른 6월에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최고 지도자를 만난 감격에 겨워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외쳤던 전직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이 더욱 그랬다. 이들은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장병들이 전사했어도 아예 없었던 일인 양 치부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올 6월을 앞두고 180도 달라졌다. 6·2 지방선거를 맞아 몰아친,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발 ‘전쟁위기론’은 광풍이라 할 만큼 거세고 거칠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수도권 주민들은 북한 장사정포의 사거리 안에 있다”며 마치 북한의 ‘서울 불바다론’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낸 논평의 제목은 이랬다. ‘한나라당 찍는 표, 우리 국민 다 죽이는 전쟁으로 돌아온다’

이미 선거도 끝난 마당에 다시 거론하기 멋쩍지만 워낙 눈길을 잡아 끈 선거구호도 있었다.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시내 곳곳에 내걸었던 플래카드 문구. ‘전쟁을 막는 현명한 방법, 한명숙’. 대통령도 아닌 서울시장으로 한명숙을 찍으면 전쟁이 안 나고, 안 찍으면 전쟁이 난다? 한마디로 실소(失笑)감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단순한 위기 상황이 아니라 전쟁 발발을 아예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이들이 보기에 북한의 비위를 거스른다 싶으면 “전쟁하자는 거냐”며 펄쩍 뛰던 전례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면 놀랄 것도 없다.

민주당과 야당들이 이처럼 섬뜩할 정도의 높은 수위로 ‘전쟁’을 들고 나온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천안함 침몰사건 때문이다. 조사 결과 북한 소행임이 드러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고 단호한 대응책들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옳다구나 하고 선거 구도를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으로 이분화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평화세력으로 부각하기 위해 고강도의 전쟁 위협전술에 매달렸다.

여기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과연 전쟁세력인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평화세력인지는 따질 필요도 없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선점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평화’만큼 매력적인 구호는 없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마술적 구호인 ‘민족’에는 때로 비판자도 나오지만 ‘평화’는 감히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가히 ‘신성불가침’이다.

정치권은 차치하자. 선거를 앞두고 친북편향 매체에 실린 많은 글이 평화타령을 늘어놓았다. 구구절절이 평화를 갈구하며 전쟁을 타기(唾棄)하는 그들의 ‘충정’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불행한 일이지만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 평화는 전쟁을 전제로 한다. 평화만 따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평화를 연구하는 평화학이 실제로는 전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이를 반증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하려면 때로 전쟁도 불사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전쟁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잘못됐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해야 옳다. 전자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데 수사(修辭)의 방점이 찍혀있다면 후자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생각해야 한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