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동수] 浮動票의 정치학
입력 2010-06-02 17:54
미국의 정치전략 전문가 마크 펜은 선진 민주국가의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부동층 유권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근래 각종 미국 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봐도 부동표가 승부의 관건이었다. 누가 백악관을 차지할지, 의회를 운영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정당이나 이념에는 별 애착이 없는 실용적 유권자들이란 것이다.
실용적 유권자들은 무소속이 많다. 마크 펜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자신을 민주당이나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라 무소속이라고 밝힌 미국인의 숫자는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 이하에서 3분의 1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는 미국 유권자들이 당이 아니라 후보자 개인을 보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2006년 미국 중간선거만 보더라도 민주당은 공화당의 아성이었던 지역에서 새롭게 32석을 획득했다. 공화당도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에서 당선자를 냈다. 뿐만 아니라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을 옮겨 다니는 유권자들도 상당히 늘어났다. 미국선거가 갈수록 당파선거가 아닌 ‘생각하는 선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펜의 결론이다.
이처럼 부동층 유권자가 늘어남에 따라 정당들은 고정표에만 매달리기보다 부동표에 호소하는 것이 선거에 더 효과적임을 알게 됐다. 부동표의 힘이 커지는 것은 미국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영국에서도 노동당이 집권하느냐 보수당이 집권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동표다. 프랑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우리나라도 선거 때마다 부동층 유권자가 계속 늘고 있다. 어제 끝난 지방선거에서도 고정표보다 부동표가 사실상 결과를 좌우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특히 교육감 선거에선 투표 전날까지 선택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 유권자가 60%를 넘었다는 것이 여론조사기관들의 분석이다.
부동표의 증가는 유권자들이 갈수록 개방적이며 유연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들은 어떤 당이 더 적절한가보다 누가 최선의 지도자가 될 것인가에 관심을 쏟는다. 부동층 유권자들은 또 공동체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좌익이냐 우익이냐의 이념을 뛰어넘어 실용적으로 사고하므로 사회가 어느 한쪽으로 극단화되는 것을 싫어하고 제동을 걸려 한다.
부동층 유권자의 증가가 지역주의와 연고 정당을 넘어 인물 중심 선거를 촉진하는 징표라면 반가운 일이다. 2년 후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선 부동표가 어떤 역할을 할 지 궁금하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