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강 (3) 어머니 눈물과 호소에도 초등학교 입학 거부당해
입력 2010-06-02 18:03
교장 선생님은 초등학교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업고 가세요. 어머니, 이렇게 심한 장애아를 받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허리를 연신 굽혔다. 그러나 한 번 돌아앉은 교장 선생님은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 빨리 집에 가고 싶어유.” 입학을 거절당하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은 몹시 추웠다. 어머니는 “아가야, 춥지” 하며 나의 언 발을 호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걷다가 어머니는 “시방도 겨울인디 왜 이리 더운겨?”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멀어져가는 학교를 바라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당시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강경 갈치장수 아주머니와 우체부 아저씨가 전부였다. 그들이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다. “이 놈이 앞으로 밥이나 먹고 살아야 할틴디 걱정시라 죽것시유.”
어머니의 한숨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밤마다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나선형의 깊고 어두운 구멍으로 곤두박질하는 꿈을 꾸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면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스며들던 하얀 달빛이 나를 위로했다.
낮이나 밤이나 나는 늘 외톨이었다. 부모님은 밭에 가시고 누나와 형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었다. 혼자 놀다 잠들고 또 깨어났을 때 그 적막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한 듯한 몽롱한 침묵, 나는 아직도 그 침묵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과수원 복숭아나무 밑에 앉아서 저 산 너머, 저 하늘 아래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누나와 형들이 학교 숙제하는 것을 보며 어깨너머로 한글을 배웠다.
그땐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지만 ‘어린왕자’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구압산에 사는 사촌형의 집에서 누군가 빌려온 그 책을 읽으며 세상에 홀로 존재했던 어린 아이는 여러 별들을 여행했던 어린왕자처럼, 이곳도 가보고 싶고 저곳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외딴 집과 복숭아 과수원이 전부였다. 봄이면 분홍색 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시큼한 복숭아, 가을이면 신도벼가 고개를 숙이고, 겨울엔 온통 하얀 눈으로 이불을 덮던 그곳. 우리 집은 이른 봄부터 바빴다. 복숭아나무 잔가지를 치고 딸기를 심었다. 여름이면 밤늦게까지 복숭아를 따서 크기대로 골라 상자에 담았다. 서울에서 온 큰 트럭에 모두 실어 줘야 하루의 일과가 끝난다.
나는 희미한 호롱불에 의지해 바쁘게 움직이는 식구들을 반쯤 졸린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마당 한구석에 피워놓은 모깃불의 매운 연기를 맡았다. 하늘에 지천으로 깜박거리는 별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혼자 잠이 들곤 했다. 우리 집은 복숭아 수확이 끝나면 담배를 따서 비닐하우스에 말려 꼭지를 짓고, 밭에는 깨와 콩, 감자, 고구마를 심고 벼농사를 지었다. 가을이면 벼를 수확하는 탈곡기 소리가 요란했다. 1년을 통틀어 단 하루도 손을 뗄 수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 늦은 시간에도 어머니는 밀린 빨래와 설거지, 집안일 등으로 밤이 이슥해서야 눈을 붙이셨다.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교회 새벽종소리가 울릴 때 가끔씩 잠꼬대 같은 기도를 했다. “불쌍한 우리 인강이 언젠간 걸을 수 있것지유?”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