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소리를 렌즈에 담다… 박훈일의 삼달리 바다
입력 2010-06-02 21:30
“중산간 오름을 쏘다니면 삼춘을 만날 것만 같아요. 삼춘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싶어 삼춘이 잘 가지 않았던 삼달리 바닷가를 찾았지요. 그곳에서 제주 바다의 또다른 미(美)를 발견했습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의 관장이자 김영갑의 제자인 제주도 토박이 사진작가 박훈일(41). 그는 갤러리의 넓은 전시공간을 놔두고 하필이면 어두컴컴한 밀감창고에서 ‘바다’를 전시하고 있다. 갤러리가 스승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기에 자신은 허름한 창고를 택한 것이다.
박훈일이 자주 찾는 바다는 표선해수욕장에서 섭지코지까지 제주도의 동남부 일대. 그 중 성산읍 삼달리 일대의 바다는 올레꾼도 잘 모르는 곳이다. 온평포구에서 표선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제주올레 제3코스가 삼달리 바다를 벗어나 중산간을 에두르기 때문이다. 특히 삼달리 바다는 제주도의 다른 해안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만한 경관을 찾아보기 힘든 곳으로 해녀들이 전복을 따고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전형적인 삶의 터전이다.
김영갑이 소나무 네 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둔지오름 옆의 평범한 언덕을 구름언덕이라 명명하고 그곳에서 삽시간의 황홀을 경험했듯 박훈일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삼달리 바다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박훈일은 파도가 검은 갯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을 셔터스피드를 최대한 늘려 촬영한다. 또 수평구도의 바다를 수직구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름을 촬영한 김영갑의 사진이 평안하다면 바다를 수직으로 세운 박훈일의 사진은 역동적이다.
박훈일의 바다는 제주도 해안을 한바퀴 도는 일주도로를 타고 달리다 성산읍 삼달리에서 눈에 띄는 아무 골목으로 들어가도 만난다. 삼달리의 골목길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공간. 백사장에 부딪쳐 스러지는 파도소리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어우러져 사시사철 바다의 교향악을 연주한다.
바다는 신산포구에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물빛은 더욱 푸르고 갯바위는 더욱 검다. 해안선을 따라 쌓은 신산환해장성 너머로 멀리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이 푸른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다. 용눈이오름 능선에서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던 바로 그 풍경이다.
바다는 온평리 포구에서 드라마틱한 전설을 벗한다. 제주의 시조인 고씨 양씨 부씨 삼선인이 벽랑국 세 공주를 아내로 맞았다는 혼인지마을, 어부들이 해질녘 불을 밝히고 바다로 나갔다는 첨성대 모양의 도대불, 삼별초가 상륙하지 못하도록 쌓았다는 환해장성 등이 줄을 잇는다. 꿈꾸듯 해안도로를 걷는 올레꾼들도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
신영포구에서 만나는 바다는 한 폭의 그림. 초록색 해초류가 융단처럼 깔려있는 백사장에서 파도에 휩쓸려온 다시마를 줍는 할머니,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수로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 그리고 물빠진 바다에서 조개를 캐는 아낙들이 제주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박훈일은 제주 바다의 소리를 찍고 싶어 했다. 김영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오름의 바람을 찍었듯 그는 귀로 들을 수 없는 바다의 소리를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삼춘을 흔적을 피해 찾아온 삼달리 바다에서 결국 삼춘과의 끈질긴 인연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주=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