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 패권을 지켜라-(하) 아시아 금융리더 첫 단추는 현지화] 현지 기업과 돈독한 관계·사회공헌 활동 중요
입력 2010-06-01 21:09
지난달 19일 중국 쑤저우(蘇州)에 위치한 신흥정밀전자유한공사 1층 회의실. 이 회사 경영진과 기업은행 관계자들이 긴급 상담을 벌이고 있었다.
기업은행 측 사람은 유상정 기업은행 리스크관리담당 부행장과 박춘홍 충청지역 본부장이었다. 은행 임원이 2명이나 해외에 진출한 한국계 중소기업의 공장을 찾아가 상담에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상담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경리와 관리담당 부장 등 중국인 실무자 2명은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미 중국 공상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바꾸는 방안이 실무선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흥정밀은 삼성전자의 노트북 케이스와 드럼세탁기의 핵심 부품인 드럼통을 생산하는 금형업체로 지난해 1억2000만 달러의 매출에 1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낸 알짜 중소기업이다. 이 때문에 공상은행뿐 아니라 건설은행 등 다른 중국 은행들로부터 대출한도를 2배까지 늘리고 금리도 기업은행보다 1% 포인트 이상 낮춰주겠다는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회사 중국인 실무진 역시 중국의 기업 관행에 보다 익숙한 은행과 거래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된 데는 국내 중소기업이 본사를 한국에 두고 해외에는 공장만 세운 경우가 많아 은행들이 현지 실무직원보다는 국내에 있는 본사 위주로 영업을 해왔던 때문으로 분석됐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임가공형태의 조립공장에 불과했던 현지 공장들이 빠르게 독립경영체제로 전환되고 있어 국내 모기업과의 유대를 통한 소극적인 영업방식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유 부행장은 기업은행과 20년 가까이 거래해온 정회우 총경리를 간신히 설득, 앞으로도 주거래 은행을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한 뒤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유 부행장은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는 해외 영업 환경을 이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기업의 니즈(needs)를 제때 살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의 사례처럼 우리나라 은행들이 해외 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행이 지난 3월부터 부행장급 임원 30여명이 중국 톈진, 칭다오, 옌타이 등 5개 지점을 돌며 ‘크로스 마케팅’을 통해 현지화 작업에 착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현지화를 위해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운영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특히 중국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는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을 위해 공장부지 계약에서부터 사업자 등록과 각종 인허가 업무를 도와준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컴퓨터와 프린터 겸용 팩스, 전화기가 비치돼 중소기업인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산업은행의 우즈베키스탄 현지법인인 우즈KDB뱅크도 현지화 성공사례다. 우리나라 해외 현지 법인 은행들이 주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것과는 달리 우즈KDB는 철저하게 현지 외국 기업 중심의 영업 전략을 추구했다.
우즈KDB의 고객 중에서 한국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현지에 진출한 외국기업이나 우즈벡 기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우즈벡 법인을 열지 못하고 대표사무소를 운영 중인 신한은행도 현지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정지호 신한은행 우즈벡 사무소장은 “2001년부터 매년 10명씩, 모두 300여명의 현지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우즈벡인들과의 유대를 끈끈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면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활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신한은행이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매년 꾸준하게 사회공익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7년 캄보디아에 진출한 신한크메르은행은 사회공헌활동을 전담하는 임원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신한크메르은행 황중연 고문은 “캄보디아 농촌 3개 마을과 1사1촌 협약을 체결, 치과 진료는 물론 화장실 설치와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 등 사회공헌활동에 연간 10만 달러 규모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쑤저우= 황일송 기자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배병우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