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불우한 이웃 돕자” 3억5000만원 저축… 영등포 산선두레 350여명
입력 2010-06-01 21:09
2005년 12월의 어느 날 밤,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 손은정 목사) 산하 노숙인들의 쉼터인 ‘햇살보금자리’에서 하룻밤을 의탁하던 한 노숙인이 TV를 보다 말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네. 그래도 나는 건강하잖아. 소주 값을 아껴 저들을 도와보자.”
옆에 있던 노숙인들이 동참해 한푼 두푼을 모았다. 그러나 그들이 독거노인을 돕겠다고 했더니, 동사무소에선 혹시 노숙인들이 노인들을 해코지할까봐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행려자 병원을 후원하겠다고 했더니, 노숙인들이 병원에 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해 노숙인들은 사랑의 연탄 나누기를 진행했다.
이것이 계기가 됐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은 이듬해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함께 살 길을 개척해보자며 ‘저축하고 연대해 활로를 모색’하는 ‘산선저축두레’를 시작한 것. 노숙인을 비롯, 영등포 지역 기초생활수급자, 일용직 노동자, 고시원 주민 등 350여명이 산선저축두레를 통해 3억5000만원을 저금했다.
‘해보자 모임’은 이들을 중심으로 영등포 지역의 빈곤 계층이 처한 문제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풀어보자며 최근 총회를 열었다. 햇살보금자리 박철수 현장지원팀장은 “어려운 사람들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저축’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자며 함께 협동하는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들이 ‘해보자 모임’을 결성한 데는 그들 자신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는 가능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막노동을 하면서 찜질방이나 PC방, 비싼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던 이들의 간절한 바람은 저렴한 지하 전세방이라도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모으기 힘들었던 이들이 산선저축두레를 통해 이 중 100명이 보증금을 마련해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긴 이들은 사랑실천에도 적극 동참했다. 행려자들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보호자 역할까지 감당하는가 하면, 매월 12월이면 사랑의 생필품 나누기 행사를 전개했다.
박 팀장은 “다 함께 잘 살고, 서로 사랑하고, 돕는 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닐까 한다”며 “만약 노숙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면, 교회들이 ‘전세 고시원’이나 ‘실비 고시원’ 같은 모델을 운영해 달라”고 제안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