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선심성 공약 뭉개기

입력 2010-06-01 17:49


2002월드컵은 우리 국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민족사적 쾌거였다. 질서정연한 거리응원으로 ‘대∼한민국’을 함께 외치는 역동성을 보여줬고 아시아권 최초로 4강에 진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응원구호는 시대마다 변화되는데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뭉개 뭉개 짓뭉개’와 같은 네거티브 구호가 많았다. 월드컵 국민구호인 ‘오 필승 코리아’는 경제선진화와 함께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결집된 것이다.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선진화와는 정반대로 정치권의 여야 ‘만사대립’ 정쟁은 격화되고 있다. 지방행정을 책임질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도 정치쟁점에 휘말려 궤도를 이탈하면서 선심성 낭비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오늘 국민 모두 투표장에 나가서 나라 빚으로 태산을 쌓겠다는 무책임한 ‘선심성 낭비공약’은 네거티브 투표로 짓뭉개버리는 엄정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재정낭비로 국가 빚 눈덩이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48조원 늘어나 총 346조원이 됐고 공기업 부채도 20%를 넘는 폭증세를 기록해 213조원으로 불었다. 정부는 적자재정을 계속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다음인 2014년에서야 균형재정을 맞추겠다는 생뚱맞은 목표를 내놓고 있다. 국가채무계산에 보증 및 손실보전 약정과 연금부족분이 누락됐다는 논란은 접어두고라도, 임기 5년 동안 매년 적자예산으로 사상 최대의 빚더미를 쌓아 넘길 터이니 차기 정부가 균형을 맞추라는 것이다.

국가채무 폭증에 대한 책임론도 가관이다. 야당은 4대강 사업 등 토목공사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비해 여당은 북한 퍼주기를 비롯한 과거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다. 빚은 쌓이는데 조세감면이나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의원입법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정부나 국회 모두 더 쓰기 경쟁에 몰두하니 국가재정의 장래가 정말 걱정이다.

지방예산은 ‘먼저 타내는 놈이 임자’로 국회 예산심의는 지역구 의원의 힘겨루기가 된 지 오래다. 선거 현수막에서도 ‘힘 있는 후보’라는 구호가 난무해 전국씨름대회 분위기를 연출한다. ‘힘 있다’는 것은 정부예산을 많이 따오겠다는 의미인데 이렇게 마구잡이로 뜯기면 국가재정 파탄은 시간문제다.

국세와 지방세 조정의 실패로 세수비중은 80대 20인 데 비해 재정지출은 중앙과 지방의 비중이 40대 60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국세수입 중 40% 정도는 지방에 보조금이나 교부금으로 배분되는데 이로 인해 지방정부의 재정책임은 실종됐고 한심한 예산낭비사례가 도처에 널려 있다.

지방선거 후보의 공약을 보면 세입대책 없이 돈 쓰는 일에만 집중되고 있다. 돈 쓰기 배포도 한껏 부풀어 특정예산 3배 증액, 수조원의 예산확보 등 ‘배’단위와 ‘조’단위가 난무한다. 선거공보를 꼼꼼히 살펴 예산낭비성 공약을 가려내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주민을 현혹시켜 당선되는 경우엔 중앙정부 공무원이 예산신청서를 깔아뭉개고 감사원은 철저한 직무감찰로 낭비성 예산신청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방정부 책임 높여가야

국세와 지방세 구성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지방정부의 재정책임을 높이고 복지사업 등 지방에 매칭 비용을 요구하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직접 수행해 공평성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지방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유도하기 위한 성과평가시스템도 조기에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지방세와 지방교부금 제도의 개편은 지방의 이해가 얽힌 복잡한 과제로 정치적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명박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최적임자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홍보하면서도 대통령 임기 내내 적자재정을 지속하는 것은 구차스러우며 퇴임 후의 부정적 꼬리표도 예견된다. 균형재정을 임기 중 달성하고 지방재정운용을 전면 재편하는 재정개혁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