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한국을 공부하는 그들

입력 2010-06-01 17:48


지난주에는 한 출판인의 요청으로 외국인 유학생 30여 명에게 출판도시를 안내한 일이 있었다. 이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기 위해 20여 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다. 이들은 그날 파주 일대 문화공간을 탐방하는 일정 중 하나로 출판도시를 찾아왔다.



서너 명을 제외한 학생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에 견학은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나라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유학 온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철학, 미술사학 등 여타 학문 전공자였다. 졸업생 중에는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학을 가르치는 등 한국문화를 알리는 기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한국을 학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들에게 출판도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써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중 어느새 이들과의 동행이 나에게는 한국학은 아닐지라도 한국어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이들과 함께 도시 안에 있는 몇 개 회사를 방문했다. 그 중 하나가 활판인쇄의 맥을 이어가는 공방이었다. 학생들은 이 곳에서 사용하는 한지의 감촉과 한지의 수명이 1000년에 이른다는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

한 출판인이 운영하는 책방을 마지막 방문지로 출판도시를 떠날 때가 되었고, 학생들이 버스에 탑승하는 와중에 한 학생이 급히 책방으로 되돌아왔다. 갈색머리, 파란 눈의 미국에서 온 그녀가 급히 뛰어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책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창한 한국어로 본인은 미국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으며, 미국에 있을 때부터 꼭 가지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었던 책을 이 책방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 책은 영어권 국가에서 출판한 미술사 서적으로 몇몇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책을 이곳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지만 높은 가격은 가난한 유학생인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격을 조금만 낮추면 살 수 있다면서 애원했다. 주인은 그 책은 판매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가격을 상징적으로 매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 책은 판매하지 않는 것이지만 같은 책을 다른 곳에서 구해보고, 책이 구해진다면 그녀가 살 수 있는 가격에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안도와 함께 연락처를 남기고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돌아갔다. 버스를 타고 책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그날 일정을 마쳤다.

이국에서 온 학생들의 태도는 이처럼 진지하다. 한국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스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는 가운데 한국을 만나고 이해하는 것이다.

개원 30년을 맞는 한국학대학원은 한때 폐쇄위기도 겪었지만 지금은 한국학 전파의 기지역할을 한다. 그 학생은 지금쯤 원하던 책을 구했을까. 한국을 온몸으로 공부하던 그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돕고 싶다.

김연숙 (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