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59)
입력 2010-06-01 11:21
눈의 신앙, 귀의 믿음
“사랑하는 목사님. 저도 저 자신에게 감동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약속을 지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는 것’은 로고스(logos)적이고, ‘듣는 것’은 파토스(pathos)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눈은 지성적이고 이성적이고 능동적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귀는 정적(靜的)이고 감성적이며 직감적인 것이고 수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시인 메클리시는 ‘도시의 몰락’이라는 시에서, “눈은 리얼리스트이다. 눈은 먼저 것과 다음의 것을 보고 그것을 서로 연결시키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귀는 시인이다, 귀는 믿는다, 창조한다, 그리고 믿는다”라고 했지요.
눈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늘 합리적이며 물질적입니다. 그들은 든든한 믿음을 소유하기 퍽 어렵습니다. 그런가 하면 귀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적이고 창조적이며 그리고 믿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믿는 이들보다는 귀로 믿는 이들이 더 공동체를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윤택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지금의 예배당을 신축할 때 여러 교우들이 헌금을 했거나 헌금 약속을 했었습니다. 얼마간의 현금과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해서 11개월 만에 예배당 공사가 마무리되었지요. 그러나 그 때, 경제적인 문제로 헌금을 하지 못한 교우들의 형편은 그 이후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5년여가 흘렀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헌금을 약속한 교우들의 심정은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모래알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교회의 중직들과 의논하여 ‘탕감’을 시도했습니다. 약속한 건축헌금에 대해서 부채의식을 갖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무개 집사도 1000만 원의 건축헌금 약정을 했었습니다. 교회에선 탕감을 했다곤 해도, 그녀는 8년여를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담은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부인 그녀로서는 너무 큰 액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지난해부터 ‘춘천시립화장장 매점’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일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기회로 받아들였고, 오늘 그녀는 '10,000,000원'짜리 적금을 타서 몽땅 교회 통장으로 입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위와 같은 문자를 보내 온 것입니다.
실로 그녀의 신앙은, ‘귀의 믿음’이라 할 만합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눈은 감았으니….”(행 28:27)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