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인 19명 사살한 이스라엘의 ‘만행’… 중동평화 다시 안갯속으로
입력 2010-06-01 08:47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구호선단을 공해상에서 저지·나포하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최소 19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뜩이나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 개선에 새로운 악재가 생겨나 중동평화는 당분간 시계 제로의 상황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특히 사건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터져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군 승선하자마자 총격”=이스라엘 현지 방송에 따르면 이스라엘 해병 특수부대는 31일 새벽(현지시간) 공해상에서 국제구호선박 6척이 가자지구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승선했다. 하지만 배에 타고 있던 친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하면서 총격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1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이스라엘군은 밝혔다. 이스라엘군 6명도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함대(Freedom)’로 이름 붙여진 구호선단에는 영국 아일랜드 터키 그리스 등 유럽 각지에서 온 친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 600여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북아일랜드 평화운동가로 197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메어리드 코리건 맥과이어도 포함됐다. 이들은 건축자재와 의약품, 교육용 기자재 등 구호품 1만t을 나눠 싣고 이날 오후 가자지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알자지라 방송과 AFP통신 등은 최소 19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구호선단은 가자지구 해안에서 65㎞ 떨어진 공해상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구호선단 활동을 이끈 ‘프리 가자 운동(Free Gaza Movement)’ 측은 이스라엘군이 배에 오르자마자 총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구호선에 타고 있던 알자지라 기자는 이스라엘군이 발포부터 먼저 한 뒤 배에 올랐고, 상공엔 작전용 헬기가 비행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구호선박들은 이스라엘 하이파로 예인됐다.
AP통신은 이스라엘군이 선박에 대한 공격 자체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구호선단의 가자지구 접근 봉쇄에 대해선 시인했다. 이스라엘군은 자유함대가 전날 키프로스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이는 ‘도발행위’이므로 나포하겠다고 경고했었다. 구호선 저지를 위해 미사일을 장착한 선박 3척이 출항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스라엘 산업무역장관 베냐민 벤 엘리에저는 도하회의 참석 중 AFP와의 통화에서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 경찰은 사건의 파장을 우려해 경계수위를 높였다.
◇국제 사회 비난 비등=팔레스타인 마흐무드 압바스는 이를 ‘대량학살’이라고 비난했으며, 무장정파인 하마스는 전 세계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에 나서 달라”고 아랍인에게 호소했다. 아랍연맹은 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22개 회원국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은 앞서 31일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가졌다. 터키 그리스 스페인 등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했다. 특히 터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촉구했다. 미국 백악관도 희생자 및 부상자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는 한편 정황 파악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2007년 6월 가자지구가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의 통치 하에 들어가자 강경 봉쇄정책을 펴 제한적 반입(1주 1만5000t)만을 허용하고 있다. 유엔은 이는 필요량의 4분의 1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프리 가자 운동이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보내려다 31일 공격을 받은 ‘프리 가자 운동(FGM)’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해제를 목표로 한 국제 구호단체다.
FGM은 2008년 8월 ‘가자지구 봉쇄 종식을 위한 유럽 캠페인(ECESG)’, 터키 인권단체 등 여러 국제 구호단체들이 연맹해 발족됐다.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 본부를 두고 8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노암 촘스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코리건 맥과이어 등이 후원자로 있다.
FGM은 가자지구의 주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품을 실은 선박을 매년 한두 차례 현지에 파견해 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이들의 인도적 지원 행렬은 가자지구 앞 해상에서 가로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8년 8월 이스라엘 해군 함정은 구호선박을 들이받아 입항을 저지했다. 지난해 6월에는 발포 위협으로 지중해에서 항해를 포기시켰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