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카운트다운’… 숨죽인 중견건설업체
입력 2010-05-31 18:53
중견건설업체인 S건설에서 일하는 A(41) 차장은 요즘 직장을 옮길 생각뿐이다. 회사는 올 들어 주택분양을 한 건도 못했다. 돈줄이 막혀 다른 사업은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인데 인터넷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에 대한 ‘악성루머’가 오르내리고 있다.
A차장은 “이대로 있다간 언제 월급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잠이 안 온다”면서 “하지만 업계 전체가 구조조정 예고로 모두 숨죽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부실 건설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대형사 몇 곳을 제외하고는 어음결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르면 6월 중 건설사들에 대한 신용위험평가가 마무리되면서 일부는 ‘퇴출’ 판정을 받을 수도 있어 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칼 가는’ 금융당국, 구조조정 초읽기=금융위원회 관계자는 31일 “이르면 6월 중에 건설사들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마칠 예정”이라며 “주채권은행의 여신액이 50억원 이상 건설사들을 기준으로 평가를 실시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1차적으로 시공능력 100위권 안팎의 건설사들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는 주채권은행 등을 통해 5월 말까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해 초 한차례 신용위험평가를 거친 A·B등급 건설사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들 가운데 신용등급의 변동이 있는 업체들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초에는 2차례 건설사 구조조정을 통해 30여개 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또는 법정관리가 이뤄졌다. 하지만 올 들어 주택경기가 악화되면서 유동성 위기로 성원건설 등 중견건설사 5∼6곳이 퇴출 위기에 빠지는 등 줄도산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성우종합건설에 이어 현대시멘트도 이날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블랙리스트’ 루머 확산, 건설업계 초비상=건설업계에서는 구조조정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중견업체 S건설은 지난해 본사를 옮기면서 새 출발에 나섰지만 수주여건 악화로 자금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져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워크아웃을 졸업한 또 다른 S건설도 내부 경영진 문제로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주가가 급락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밖에 중견업체인 N건설과 W건설 역시 지난해 말부터 구조조정 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시공능력 20위원 안에 드는 A등급 업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중견업체들은 저마다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일부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인력 간 합종연횡도 벌어지고 있다. H건설 관계자는 “원가절감은 기본이고 사업장 재고물량과 주문량도 대폭 줄이는 등 현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면서 “하지만 내부적인 자구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부실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정부 입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구조조정 이후에 건설업계 간 ‘부익부 빈익빈’ 상황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재찬 김정현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