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경쟁력 갖춘 ‘특화 전략’ 짜야
입력 2010-05-31 21:26
아시아 금융 패권을 지켜라-(중) 한국판 산탄데르 원한다면 발상을 전환하라
지난달 24일 오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KB캄보디아 은행 본점 1층.
자금 수요가 몰리는 월말이 아니라서 대기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어 있는 창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다른 나라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은 한국 기업과 교민을 상대로 제한적인 영업을 하다보니 은행을 직접 방문하는 고객을 찾아보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이는 KB캄보디아 은행의 여·수신 고객 중 캄보디아 현지인 비중이 64.4%로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KB캄보디아 은행은 설립한 지 1년 만인 5월 현재 2540만 달러의 총 자산에 1353만 달러의 예금과 1167만 달러의 대출실적을 거뒀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0달러에도 못 미치는 가난한 나라에서 거둔 실적치고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캄보디아의 실험, 금융과 산업의 동반진출=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한번쯤 여행가고 싶은 나라’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
금융전문가들은 다른 이유로 캄보디아를 주목하고 있다. 금융과 산업이 융합된 형태로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KB캄보디아 은행.
이 은행의 주주는 국민은행(51.0%) 경안전선(30.38%) 대한전선(9.31%) 포스코건설(9.31%) 등 4곳. 금융과 산업자본이 결합한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게 된 것은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한 기업가와 은행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캄보디아 진출의 교두보는 경안전선 김명일 회장이 마련했다. 김 회장은 2005년 캄보디아에 진출,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선회사인 KTC케이블을 설립하고 레저와 건설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왔다. 김 회장의 최대 고민은 금융서비스. 현지 은행들은 대출 리베이트가 횡행하는 등 신뢰하기 어려웠다. 김 회장은 2008년 7월 본인이 직접 크메르유니언 은행을 세웠으나 기업가인 그에게 은행업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이듬해 5월까지 크메르유니언 은행의 대출금은 0원.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을 잇는 ‘트라이앵글 네트워크’ 구축을 구상 중이던 강 행장에게 캄보디아 진출은 호기였다.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독자적으로 진출했을 때보다 현지사무소→지점→현지법인 전환 등 통상 3∼5년이 걸리는 은행 설립기간과 이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는 부수 효과도 있었다.
크메르유니언 은행은 KB캄보디아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비로소 은행의 모습을 갖춰갔다. 14명의 금융전문가들을 새로 뽑고, 현지인을 대상으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영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KB캄보디아 은행은 오는 7월 흑자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크메르유니언 은행보다 앞서 한국 기업이 현지에 설립한 A은행이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장기성 KB캄보디아 은행장은 “은행의 경영 노하우와 기업의 적극적인 공격경영이 맞물려 기업과 은행이 서로 윈-윈 하는 좋은 결과가 도출됐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특화전략 필요=전문가들은 아시아의 리딩뱅크가 되려면 KB캄보디아 은행처럼 우리 실정에 맞는 대안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점 개설, 펀드 형태의 현지 은행 투자, 현지 은행 인수 등 중구난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실정에 맞게 특화된 진출 전략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은행의 발전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이 좋은 예다.
산탄데르 은행은 선진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투자은행(IB) 업무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최근 20년간 해외에서 이뤄진 인수·합병(M&A)만 해도 20건이 넘을 정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지 은행을 과감하게 인수해 덩치를 키워갔다.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변방’이나 다름없던 스페인의 소형 은행이 20여년 만에 세계 8대 은행으로 성장한 원동력이었다.
산은경제연구소 서동우 연구원은 “해외 진출은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아시아 국가 위주로 하되 소매금융이든 기업금융이든 잘하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놈펜=글·사진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