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6·25가 한국과 일본의 전쟁?
입력 2010-05-31 18:03
“보수정권이 집권하고도 역사교육이 오히려 후퇴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 P씨는 얼마 전 신입사원 모집에서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다. 지원자를 5명 단위로 나눠 진행한 면접에서 마지막 조가 들어왔을 때 P씨는 공통질문으로 “6·25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역사를 잘 모른다고는 들었지만 설마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답변을 듣고 정말 놀랐단다. 5명 중 두 명은 아예 뭔지 몰랐고 세 명이 “전쟁 아니냐”고 조심스레 대답하더라는 것. 전쟁이라고 답한 3명에게 다시 “누구와 누구가 싸운 전쟁이냐”고 물었는데 그 답변이 더 기가 막혔다.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전쟁이라고 말했고 한 사람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싸움이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P씨의 말을 듣고 참석자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부터 ‘6·25’ 대신 ‘한국전쟁’이라고 배워서 그럴 것이라는 분석, 공교롭게 그 지원자들만 몰랐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우리는 다시 확인해보기로 하고 모임을 가진 식당 여직원과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차례로 불러서 “6·25를 아느냐“고 똑같이 물었다. 충격적이게도 사실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모두 모른다고 했는데, 안다고 말한 직원도 일본과의 전쟁이라고 답했다.
P씨의 전언이나 모임의 확인을 통해 느꼈지만 젊은이들은 6·25를 임진왜란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혼동하고 있었다. 전쟁인 것 같기는 한데, 막상 전쟁을 떠올리면 왜적과 이순신 장군이 생각나는 것이다. 아니면 영화나 TV를 통해 가끔 접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민군과 계엄군 전투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참으로 황당하고 참담한 일이다. 6·25가 어떤 사건인가. 1950년 6월 25일 38선 전역에 걸친 북한군의 남침으로 3년 1개월 동안 동족이 피를 흘리며 싸운 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우리 측에서만 한국군과 유엔군을 합쳐 수십만명의 군인이 전사하고 민간인들은 수백만명이 사망했다.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10만여명의 전쟁고아와 100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그야말로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참화였고, 오늘의 천안함 사건의 시발도 결국은 6·25전쟁이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이 6·25를 모른단다. 마침 6·25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물어봤을 수도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도 있다. 요즘은 6·25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전쟁이라고 배우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6·25가 일본과의 전쟁이고 경상도와 전라도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다. 역사교육을 홀대하고 소위 국·영·수에만 치중하는 우리 교육정책의 책임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도입한 미래형교육과정은 역사를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돌려버렸다. 고교 1학년에는 조선 후기까지, 그러니까 근대 이전의 역사를 필수로 배우지만 그나마 후년부터는 이것도 선택으로 바뀐다.
그러다 보니 대학입시에서 국사를 전형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서울대 지망생을 제외하고는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사건과 연대 등 외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조만간 우리 고교에서 국사과목이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보수의 가장 큰 가치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이다. 그런데 보수정권이 집권하고 오히려 그 같은 가치를 높이는 교육이 후퇴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굳이 이해하자면 실용주의를 들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국사를 스페인어나 아랍어 등 제2 외국어처럼 선택과목 취급하는 것은 생각할수록 해괴하기까지 하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리고 이달 25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때 맞춰 천안함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6·25를 일본과의 전쟁이고 영호남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그래도 국·영·수 덕분에 우리나라는 미래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