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설교] 지도자여, 권세 되찾아 진리의 나팔 불라

입력 2010-05-31 17:30


누가복음 4장 31∼37절

태국이 최근 반정부 시위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는 국왕의 권위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국왕의 한 마디에 여야는 주장을 굽혔다. 그러나 최근 국왕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갈등을 조율할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나라의 위기는 결국 권위 붕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반기독교 세력의 거센 도전을 받으면서 성장이 멈추어버린 한국교회의 위기는 지도자들의 권위 붕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상은 목회자들의 말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밀려오는 슬픔을 겪는다.

본문은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 귀신이 떠나는 사건인데, 이야기가 권위로 시작하여 권위로 끝난다. 32절에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다’는 헬라어 단어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는 뜻이다. 그분에게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는 권위가 있었다. 이 반기독교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권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첫째, 지도자의 권세는 하나님을 만난 흔적에서 나온다. 32절의 그 말씀이란 소유격이다.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께서 깨달은 말씀이다. 예수님 안에서 자기화된 말씀이다. 그가 치열하게 연구하고 노력하다가 은혜 받은 말씀이며, 인격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얻은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은 단지 성경 지식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 자신이 걸어 나오시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설교의 특징은 이전의 율법해설서들을 단지 읽을 따름이었다. 사람들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호랑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들을 때 흥미를 가지지 않지만 호랑이를 만난 체험을 들으면 긴장하고 땀을 흘린다. 호랑이를 만난 흔적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성도의 힘은 하나님을 만난 흔적에서 생기는 것이다.

둘째, 지도자의 권세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의 열정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시다. 그런데 갑자기 화를 내시고 있다. 그 이유는 귀신이 34절에서 ‘우리’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란 귀신들의 복수형으로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정확히는 귀신들린 사람과 귀신의 복수형을 의미한다. 결국 귀신의 의도는 시간을 끌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옥 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것은 모두 다 용서해도 이것만은 용서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셋째, 지도자의 권세는 말씀으로 죄를 이김에서 나온다. 36절에는 말씀의 능력으로 귀신이 나갔다고 말한다. 귀신 앞에 더럽다는 수식어가 있다. 귀신은 더러운 죄악의 현장에 존재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더러운 죄로 오염된 사람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신 것이다. 참 말씀은 죄를 이긴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구속주 예수님의 말씀은 죄가 떠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 말씀 앞에서 죄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죄의 더러운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말씀이 들어가면 사라진다. 끊지 못했던 죄의 습관들이 바로 말씀의 능력으로 끊어진다.

1904년 ‘감리교 신문’에는 지방 탐관오리들이 “저를 야소교인들이 많은 서북 지방 말고 경상도 지방으로 보내주세요”라고 했을 만큼 당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전체 인구 1200만명 가운데 세례교인은 1만명이었다. 이런 권세가 한국 교회에 회복되기를 바란다.

길성운 목사(성복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