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출신 외국인 돌보기 9년, 열방선교회 윤영숙 목사

입력 2010-05-30 16:52


29일 오전 서울 조원동(옛 신림8동)의 작은 빌딩 5층. 좁은 복도를 따라 놓인 신발장에 남녀 신발 수십 켤레가 가득했다.

“마마, 손님!”

기자를 본 백인 여성이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짧은 퍼머 머리에 풍채가 좋은 여성이 걸어 나왔다. 열방선교회를 9년째 이끌고 있는 윤영숙(58) 목사였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 지역에서 돈벌이를 위해, 혹은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왔다가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를 ‘마마’(러시아어로 엄마)라고 불렀다.

열방선교회에는 현재 25명의 외국인이 머물고 있다. 고려인 후손부터 백인까지, 나이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13명은 직장에 일하러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경을 읽거나 침대에서 쉬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는 이들은 대부분 몸이 불편하거나 질병이 있다고 했다.

이들을 돌보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윤 목사는 자신의 어머니 얘기부터 꺼냈다. 그가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49세였던 어머니가 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평생 믿음이 좋았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내 몸에 칼이라고 한 번 대보고 죽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돈을 마련하지 못해 어머니는 끝내 수술을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 때 일은 평생의 상처로 남았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나에게 아픔을 남긴 것이 어머니의 사명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후 사업을 시작해 큰 돈을 벌기도 했던 윤 목사는 39세 때 부도가 나는 아픔을 겪으면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는 물도 못 마실 정도로 기력을 잃고, 하루하루 자살만 생각하고 살 던 무렵 오빠의 권유로 교회를 갔다가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다. 기도를 하는 데 박하사탕을 먹었을 때의 화한 느낌이 온 몸을 감쌌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됐었다고 한다.

윤 목사는 신학교에 진학, 2001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듬해 4월에는 한 상가 건물 지하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런데 신학교 후배였던 고려인 3세를 통해 외국인들이 하나 둘 교회에 머물기 시작했고 한달 정도 지났을 때는 그 수가 20여명으로 늘었다. 윤 목사는 이들을 위한 사역에 전력키로 결심했다. 열방선교회의 시작이었다.

한국에 들어왔다가 병이 생기거나, 오갈 데가 없어진 외국인들이 입소문을 듣고 ‘마마’를 찾아왔다. 지금껏 2000여명이 선교회를 거쳐 갔고, 500여명이 윤 목사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수 십 명은 큰 돈이 드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5명은 한국 땅에서 끝내 사망해 윤 목사 손으로 장례를 치러줬다.

윤 목사는 이들을 단순히 도움을 줘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당장 다급하고, 먹고 잘 곳이 없어 오는 이들이지만 미래에 중앙아시아와 이슬람권을 변화시킬 주님의 자녀들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열방선교회가 매일 오전 2시간, 저녁 2시간 30분씩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시키는 것도 이들이 고국에 돌아가 하나님의 양으로 살도록 하는 훈련이다.

윤 목사는 선교회 문을 연 뒤 끊임없이 ‘돈’ 문제로 고생을 해야 했다. 전기나 가스 공급이 끊기는 것은 예삿일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의 빚을 지기도 했다. 그러나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성령님이 윤 목사를 일으켜 세웠고, 선한 후원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서울 아산병원 등 수많은 병원, 은평천사원, 많은 교회,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들…. 저는 이 분들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항상 느낍니다.”

열방선교회는 지금도 위기다. 설립 이후 네 번째로 마련한 지금의 거처가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대출 연체이자 등 때문에 한 푼도 못 건지고 거리고 나앉게 됐다. 경매 낙찰자는 다음달 10일까지 비워달라고 통고해왔다. 윤 목사는 인터넷을 뒤져 경기도 안산에 급매물로 나온 교회 건물을 찾아냈지만, 문제는 비용.

“이 사역은 ‘윤 목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걱정은 되지만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안산에 가서 다른 나라 민족들도 품으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열방선교회 ilovean.com·02-838-0144)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