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발언으로 본 중국의 속내… 북한·안보리 단어 전혀 언급안해 두고봐야
입력 2010-05-30 21:34
“지난번이 반 걸음 다가온 것이면 지금은 한 걸음 다가온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0일 제주에서 폐막한 한·일·중 정상회의 기간,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중국 측 입장에 대해 “전체적으로 (한국과 중국 간) 이해의 전전이 있었다”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 전까지 우리 정부가 수행한 조사결과에 대한 평가는 유보한 채 혈맹인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28일 한·중 정상회의에서 미세한 변화의 기류를 내비친 데 이어 3국 정상회의 기간에는 천안함 사태를 직접 언급하고 희생자들에 애도를 표하는 등 이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특히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이날 3국 공동언론발표문에 “일·중 정상은 한국과 국제합동조사단이 수행한 공동조사와 각국 반응을 중요시했다”는 표현을 삽입하는 데 동의한 것도 분명한 진전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책임 있는 국가’라고 언급한 부분도 주목할 대목이다. 우리 정부가 줄곧 천안함 사태 해결에 있어 ‘중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분위기와 달리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원 총리가 북한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이 중국의 신중론 유지 근거로 제기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박병광 박사는 “원 총리가 천안함 희생자에 대해 조의를 표했는데, 이는 중국이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면서도 “전반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었고, 한국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것보다 북한과 남한 양측이 냉정해야 한다는 것을 주문한 것으로 읽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원 총리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밝힌 중국의 입장은 사실상 대북 제재에 ‘반대’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이 경우 유엔 안보리를 통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려는 우리 측 방침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원 총리가 이번 방한에서 언급한 내용이 중국 특유의 외교적 ‘립 서비스’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입장 선회를 예고한 것인지는 향후 중국의 움직임을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원 총리가 중국 지도부에 어떤 식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과 분위기, 개인적 판단을 전달할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의사결정 구조상 원 총리는 주로 경제와 내정을 담당하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외교와 국방을 맡고 있다. 특히 천안함 사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원 총리의 견해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의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원 총리 방한 기간에 이례적으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적극 해명에 나섰다는 것이다. 중국의 결정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