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떠오르는 亞 금융시장 잡자” 전방위 공략

입력 2010-05-30 18:48


아시아 금융 패권을 지켜라-(상) 글로벌 은행들이 아시아로 몰려온다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아시아로 몰려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은행들이 아시아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바람직한 아시아 진출 모델과 전략적 개선방안을 모색해본다.

세계 최대 은행인 영국 HSBC그룹 마이클 게이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27일 런던에서 홍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본사를 영국에 그대로 두고 홍콩행을 택한 그의 깜짝 행보를 놓고 당시 국제 금융권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금융회사 CEO에 대한 연봉을 제한하는 등 갈수록 강화되는 영국 금융당국의 규제 칼날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뒷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세계 100여개국에 5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금융정보회사 톰슨 로이터의 에릭 프랭크 투자·자문부문 회장이 지난 2월 월스트리트를 떠나 홍콩에 새 둥지를 틀었고, JP 모건의 더글러스 워스 회장도 잇따라 홍콩에 입성하면서 이 같은 ‘오해’는 설득력을 잃었다.

오히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이머징 마켓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HSBC그룹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폴 리치 HSBC 인터내셔널 총괄 대표는 지난 20일 홍콩 현지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CEO가 직접 홍콩에 건너와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아시아 시장에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선진 시장의 고객들을 이머징 마켓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리치 대표는 “자체 조사결과 2013년 아시아 지역 소비자들이 미국과 유럽연합(EU) 소비자를 제치고 가장 큰 구매력을 지니게 되고, 2016년에는 아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 아시아 진출 각축=HSBC그룹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아시아 금융시장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JP 모건은 2013년까지 중국과 인도에서 프라이빗 뱅킹 투자를 2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JP 모건은 1500억 달러 규모의 고객 자산을 책임지고 있는 더글러스 워스 국제 프라이빗 뱅킹 부문 회장을 홍콩에 전진 배치했다.

호주 4대 은행인 ANZ는 지난해 8월 5억5000만 달러를 투자, 대만·싱가포르·인도네시아·홍콩·필리핀·베트남 등 6개국의 은행을 인수해 동남아시아 전역을 커버하는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씨티그룹은 지난해 9월 미국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했고, 전 세계 금융업 모델로 자리한 스페인 산탄데르은행도 중국건설은행과의 합작을 추진 중이다.

◇국내 은행들, 아시아 진출 적극적이어야=우리나라 은행들은 소극적인 경영으로 금융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으면 투자를 망설이는 등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에게 절실한 해외 금융서비스는 여전히 부족하다. 현대자동차 인도 첸나이 공장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모두 16억 달러를 투자해 1998년부터 첸나이 지역에서 1, 2공장을 준공, 연간 6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첸나이 지역에 만도 등 170여개 현대차 협력업체가 10년 넘게 가동 중이지만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다.

올해 들어서는 ‘메가 뱅크’로 통칭되는 대형화 논란에 매몰돼 적극적인 해외진출 시도가 부진한 상황이다. 이미 시중은행 전체 자산 1126조원 중 806조원이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4대 은행에 집중돼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들 빅 4 은행의 시장 점유율은 72%로 2000년의 50%보다 크게 늘었다.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금융산업 선진화 비전 역시 구호만 있을 뿐 이에 걸맞은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은행권 관계자는 “선진화 비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2005년 참여정부가 발표한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프로젝트와 별 차이가 없다”면서 “5년동안 제자리 걸음만 한 셈”이라고 말했다.

홍콩에 진출해 있는 한 은행 관계자는 지난 21일 “글로벌 은행들이 하나 둘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한국계 은행들의 입지가 차츰 줄면서 현지 은행에도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면서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국내 규제 완화와 지속적인 발전 대책 등 전략적인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콩=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