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설동순 (21·끝) 내게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 구원받은 것

입력 2010-05-30 17:17


지난해 10월 터키에 이어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에 두 번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국민비전클럽에서 함께 활동하는 진흥문화사 박경진 회장님의 제안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등을 둘러보고 왔다.

시내산에 올랐던 일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칠흑같이 어두운, 손이 곱아들 것처럼 추운 날이었다. 새벽 2시반에 숙소를 나서 처음 두 시간은 낙타를 타고 올라갔다. 가파른 계곡을 오르는데 갑자기 내가 탄 낙타가 샛길로 접어들었다. “워매! 워데로 간다냐, 시방!” 내 소리에 놀랐는지 낙타는 주저앉아버렸다. “음마? 이 넘이 시방 여기 주질러앉어 뭐 하자는 것이여! 여봐요! 언능 와서 이 넘 좀 워찌 해 보드랑게!” 소리소리 치자 현지인 안내자가 채찍을 들고 달려왔다. 낙타는 수차례 얻어맞고서야 일어서 제 길로 돌아갔다. “이 넘의 낙타야. 그라게 왜 매를 사서 맞니야, 넘들 가든 대로 가믄 될 것을.” 낙타에게 말을 건네다 보니 문득 묘했다. 때때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날 때마다 크고 작은 시험으로 나를 돌려놓곤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라게, 나도 알어서 잘 갔으믄 엄한 시험 안 들고 살았을 거인디, 허긴 나처럼 못난 것을 매 때려 가믄서 여기꺼정 델꼬 오신 하나님도 참 무던하시네!”

3분의 2쯤 이르자 더 이상 낙타를 탈 수 없다고 해 일행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끓는 물을 파는 곳이 있어 우리는 컵라면을 먹었다. 하는 일이 일인지라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고추장이며 장아찌를 몇 상자씩 가져가곤 하지만 마침 이때는 지닌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갓김치를 꺼냈다. 집에서라면 당장 내버릴 만큼 시어터진 김치였지만 새벽 4시에 추운 산길에서 먹는 그 맛은 기가 막혔다. 맛으로 평생 장사를 해 왔지만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맛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800개 남짓한 돌계단을 마저 올라 정상에 올랐다. 모세가 기도했던 그 자리에서 일출을 보며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항시 축복하시더니 여기까지 왔구나!”

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군수도 도지사도 부럽지 않다. 세상 기준에 차도록 큰 성공은 못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았다.

내 신앙생활을 그렇게 반대하셨던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모두 병석에서나마 세례를 받고 신앙의 확신 속에 돌아가셨다. 나를 포함한 4남매와 남편, 네 딸 모두 신앙 안에서 살고 있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어린 나를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신 전주 전동교회 김성돈 원로목사님, 시험에 빠진 나를 정신이 번쩍 들도록 깨우쳐 주신 뒤 지금까지 도움을 주시는 강서신광교회 유정성 목사님, 가까이서 늘 이끌어 주시는 순창읍교회 김별배 목사님과 우상임 사모님이 그 은인들이다.

나는 지금껏 부자 되게 해 달라고, 자녀들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쓸 만큼 채워주셨다. 주신 하루에 만족하고, ‘설 권사’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기왕 하는 신앙생활 1등 아니면 2등에는 들자’는 마음가짐으로 살다보니 기쁜 내일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맨키로 재미지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 거여!”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