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 김대우 감독 “방자, 순정파 훈남으로 그려보고 싶었죠”
입력 2010-05-30 17:33
영화 ‘방자전’은 춘향전의 두 주인공 이몽룡과 성춘향을 뒤로 물리고 방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수 세기동안 깨지지 않던 구조에 대한 ‘발칙한’ 도발이다. 하지만 영화는 굉장히 설득력 있고,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보다 “누가 이 이야기를 썼을까”하는 궁금증이 먼저 떠오른다.
지난 2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대우(48) 감독은 “춘향전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같은 얘기에서 방자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왜 하필 방자였을까. 그는 “몽룡이 방자에게 ‘이 얘기를 전해라’라고 하면 방자가 가서 전한다. 하지만 속에서는 ‘야. 니가 가서 직접 해’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몽룡과 춘향사이에서 실제로 일을 진행하는 건 방자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 세상 어떤 동물도 자기 먹이는 자기가 직접 물어온다. 그런데 인간은 왜 시키는 자와 따르는 자가 생겨났을까하는 고민이 항상 있었다. 사회적, 이념적인 계급의식이라기보다 좀 더 생태적인, 동물적인 접근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방자전’에서 모든 캐릭터를 해체해 새롭게 창조했다. 춘향전의 신분적인 틀만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방자는 배운 건 없지만 뭐든 척척 잘 해내고 여자를 배려할 줄도 안다. 그리고 사랑에 목숨을 거는 순정파다. 요즘 말로 완전 ‘훈남’이다. 반대로 지고지순한 사랑의 두 주인공인 몽룡과 춘향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몽룡은 생각보다 별 볼일 없는 장원급제에 실망을 느끼고 출세를 위해 춘향에게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는 음흉한 속내를 가진 인물이다. 춘향은 방자를 사랑하면서도 신분상승 때문에 몽룡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속물근성을 지니고 있다. 춘향의 몸종 향단이는 춘향에게 경쟁심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를 녹록치 않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방자는 동네 느티나무처럼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하인이지만 오히려 양반을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김 감독은 “춘향전은 공격의 대상이나 목표가 아니라 소재였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자전’은 원작을 공격한다. “세상이 그리 쉽고 아름다울 리가 있을까요. 장원급제한 인물이 실컷 놀고 난 기생 딸을 또 만나러 왔을까요. 모든 갈등이 있고 이면이 있고, 누군가의 희생이 존재하는데 그렇게 쉽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극본을 쓴 ‘스캔들-조선남녀상렬지사’부터 감독 데뷔작인 ‘음란서생’ 그리고 ‘방자전’까지 김 감독은 공교롭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작품을 그리고 있다. 그는 “꼭 조선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고려나 신라는 왠지 나와 DNA가 맞지 않는 거 같다”면서 “양반 문화가 주는 그로테스크함도 흥미롭다. 뭔가 억눌려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터부를 깨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6월 3일 개봉. 18세가.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