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노석철] 선거의 교훈
입력 2010-05-30 17:27
30년 동안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던 제시 헬름스는 1984년 민주당 짐 헌트와 노스캐롤라이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맞붙는다.
헬름스는 주지사를 연임하던 헌트가 위협적인 도전자로 떠오르자 네거티브전을 시작했다. “헌트가 뉴욕 등 ‘좌파 근거지’에서 모금운동을 한다”는 내용의 TV 광고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킹 목사 기념 연방공휴일 제정안을 놓고 “공휴일이 되면 연간 50억∼120억 달러의 비용이 추가될 것”이란 광고로 인종주의 논란을 부추겼다. 비열하다는 비난이 거셌지만, 노스캐롤라이나 백인들은 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는 막판까지 헌트를 동성애자, 노동조합의 대장, 사기꾼으로 몰아붙여 초반 두자릿수 격차를 뒤집고 52 대 48로 이겼다.
1990년엔 민주당 하비 갠트와 맞붙었다. 갠트는 샤롯데 시장을 역임한 최초의 흑인이었다. 헬름스는 “갠트가 지지하는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 백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식의 인종 이슈를 또 다시 활용했다. 결과는 헬름스의 승리였다.
헬름스는 잔인한 네거티브 전술 때문에 화전민 정치(slash and burn politics)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선거에서 이기는 법을 정확히 아는 정치인이란 평가도 있다.
여기에 여야의 6·2 지방선거전이 오버랩된다. 민주당은 선거 초반 4대강과 세종시 논란에 이어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검찰 수사와 무죄 판결까지 이어지며 상승세를 탔다.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은 초반부터 재래식 화력을 총동원했다. 한 후보를 ‘무상 후보’ ‘스폰서 후보’라고 몰아세웠고, 천안함 사태에선 민주당에 ‘친북 좌파’ 낙인을, 진보진영 교육감 후보엔 ‘급진좌경 선동가’ 딱지를 붙이며 보수층을 자극했다. 야당 후보의 성매매 의혹도 제기했고, 정몽준 대표까지 가세해 자유선진당을 ‘충청도의 망신살’이라고 비난했다.
오히려 체면 무시하고 덤벼야 할 민주당은 짐짓 점잖고 무기력했다. 천안함 이슈의 파괴력이 너무 컸던 탓이긴 해도 이른바 노풍(盧風)이나 4대강 이슈도 거의 활용하지 못했고, 매번 일관된 전략 없이 우왕좌왕했다. 최대 격전지인 서울에서도 한 후보는 사생결단식 전투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탱크 몰고 오는 적에게 소총으로 대적하는 느낌이랄까.
헬름스에게 패한 헌트는 훗날 “누군가 나보다 먼저 선거운동을 시작하도록 놔두지 말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민주당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노석철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