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밌는 한국식 수사물, 안방극장 접수했다
입력 2010-05-30 18:51
가족극, 로맨틱 코미디, 멜로 위주였던 한국 드라마가 미스터리 기법을 차용하면서 장르의 풍성함을 더하고 있다. 미스터리 기법은 매회 던져진 사건을 추리와 지략으로 해결하는 수사물 장르에서 볼 수 있다. 인기 미국 드라마 ‘CSI시리즈’나 ‘X파일’이 수사물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수사물을 우리 풍토에 맞게 녹여내며 미국식 수사물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
MBC ‘동이’(월·화 오후 9시55분) KBS 2TV ‘국가가 부른다’(월·화 오후 9시55분) KBS 1TV ‘거상 김만덕’(토·일 오후 9시45분)은 주인공이 매회 사건을 해결하며 성장하는 골격으로, 미스터리적 요소를 적극 차용하고 있다.
수사물이 드라마에 녹아든 이유는 흡입력 때문이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스릴러 장르처럼 추리를 요하는 사건들이 드라마에 녹아든 이유는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어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기 때문”이라면서 “에피소드를 해결해갈 때마다 주인공은 궁극적으로 정체성과 철학을 갖게 되고 시청자는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수사물은 사건 해결을 목적으로 삼는다. 반면 한국식 수사물에서 사건은 주인공이 성장하는 자극제로서 수단에 가깝다. ‘동이’에서 감찰궁녀 동이(한효주)는 궁궐 안의 음모를 파헤치면서 일국의 왕비로서 지녀야 할 자질을 갈고 닦는다. ‘국가가 부른다’에서 오하나(이수경) 순경은 정보국 요원과 마약 밀매범을 검거하는 수사에 투입되면서 돈만 알던 속물에서 국가와 조직을 생각하는 경찰로 거듭난다. ‘거상 김만덕’에서도 김만덕(이미연)은 반대 세력의 계략과 음모를 극복하며 부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추리가 엄밀하고 과학적으로 진행되기보다 시청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펼쳐지는 점도 우리 드라마의 특징이다. ‘동이’에서 동이는 김윤달이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미려고 다른 사람의 시신을 그의 것으로 위장했음을 쉽게 알아챈다. 김윤달은 평소 백반증을 앓았는데 정작 시신에는 흰색 반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는 동이의 대사만으로도 사건의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수사 과정에 코믹한 상황 설정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국가가 부른다’에서 마약밀매범 주수영을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오하나가 사기당한 돈을 받기 위해 여객 터미널로 갔기 때문이며 이는 필연보다 우연에 가깝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미국 드라마처럼 꽉 짜인 수사물은 한 순간도 눈을 떼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마니아들이 즐겨본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대다수의 시청자가 편하게 보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서 정밀한 추리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추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