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스키 감독 ‘유령작가’, 매순간 팽팽한 긴장감… 히치콕의 맥을 잇다

입력 2010-05-28 17:49


영화 ‘유령작가’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물이다. 영화 내내 피를 튀기거나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는 없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끝나는 순간까지 관객은 계속 마음을 졸이며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시나리오는 논리적이고 구성은 탄탄하다. 사건을 전개하는 치밀함은 매순간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BBC 정치부 기자 출신인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고스트’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스릴러의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최신작이다.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를 떠올리게 한다. 해리스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히치콕적인 스릴러 요소를 넣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이 영화에 대해 “폴란스키의 기법은 히치콕을 연상시키면서 감독의 스릴러 세계를 집약해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폴란스키 감독은 이 영화로 올해 제 6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유령작가’는 전직 영국 총리의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서 얽힌 음모를 캐가는 과정을 그린다. 전 영국 총리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 분)의 자서전 대필작가가 숨지면서 유령작가(이완 맥그리거)가 새로 자서전 집필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당신의 유령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는 영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자살인 줄로만 알았던 전임자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그는 전임자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뭔가 음모가 있음을 차차 알아 나간다. 동시에 아담 랭은 재임 당시 벌였던 정책의 이면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다.

‘유령작가’는 폴란스키 감독이 처음으로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차이나타운’(1974)에서 1930년대 미국 LA를 무대로 인간의 탐욕과 복수를 보여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폴란스키는 전작인 ‘피아니스트’(2002)에서 2차대전 당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처절한 삶을 보여주는 등 시대물을 해왔다.

폴란스키는 30여년 전 성추행 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현재 스위스 별장에 가택연금 중이다. ‘유령작가’ 촬영을 마치고 최종 편집 도중 제5회 취리히 영화제 평생공로상을 받으러 스위스에 왔다가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속 아담 랭이 현직에 있을 때나 물러나서나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처한 것과 폴란스키의 현재 상황은 묘하게 겹친다. 영화 속 황폐하고 피폐한 섬의 풍광, 쓸쓸하고 건조하게 묘사된 경치 등은 마치 그가 자신의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 하다. 6월 3일 개봉. 15세가.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