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 우리차문화원장에게 듣는 차 마시는 요령
입력 2010-05-28 17:42
“우리 손녀도 茶 배우며 많이 차분해졌어요”
“우리 집 앞에 핀 풀들은 제발 뜯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햇살이 따사로워지기 시작하면 이연자(66)씨는 경비 아저씨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곤 한다. 하지만 어느 새 보면 말끔히 정리돼 있다. 그들에겐 그것이 일이니 나무랄 수는 없지만 ‘에고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뜨락에 핀 잡초 한 다발, 발부리에 차이는 조약돌 한 덩이, 이웃이 내다버리는 사금파리 한 조각…. 이씨가 이들을 귀히 여기는 것은 모두 찻자리를 꾸미는 소재로 쓰기 때문이다. 찻자리?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차를 마시는 자리, 티 테이블로 생각하면 쉽겠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꾸미는 것이 좋으니…. 그저 내가 좋아 하는 일이지요.”
3일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3일 서울 도봉산 자락에 자리한 이씨의 집을 찾았다. 한배달 우리차문화원 원장인 이씨는 차의 날(25일)을 앞두고 찻자리를 이리저리 꾸며보고 있었다. 이날 찻상으로 쓴 것은 길에서 주워 온 구들장 조각이고, 수저받침은 나뭇가지와 돌, 수반은 요즘은 잘 안 쓰는 놋그릇, 그 위에 꽂혀 있는 것은 집 앞에서 캐온 잡초였다. 이씨는 “차를 마실 때 일본은 엄격한 격식을 따졌지만 우리나라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소박했다”면서 “누구나 차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박한 찻자리를 꾸며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찻상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꼭 도자기 잔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나무도마를 찻상으로 써도 무방하고, 유리잔에 담으면 차의 고운 빛깔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다구는 갖추지 않아도 되지만 이왕 차를 즐길 양이면 티백보다는 잎차를 시작하라고 이씨는 권한다.
“잎차를 마시게 되면 성격이 차분해지며 조심성이 몸에 배고, 예절도 발라지며, 집중력도 키워집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교육이 됩니다.”
어렸을 때는 한집에 살았고, 딸이 살림을 난 요즘은 주말마다 찾아오는 외손녀(김서연·7)에게도 차를 가르쳤다. 뜨거운 물을 다루게 되니 조심하게 되는 것은 기본. 물을 데워 알맞은 온도로 식혀 찻잔에 붓고 찻잎이 우러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차분해질 수밖에 없다. 또 손가락을 붙인 채 오른손으로는 찻잔을 들고 왼손으로는 받쳐 주는 기본동작을 배우는 동안 단아한 자세가 몸에 붙게 된다. 웃사람부터 차를 따르게 하고 마실 때 홀짝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가르치니 예절 교육도 된다. 이런 절차를 하는 동안 집중력은 절로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차의 효능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얘기하는 것이 새삼스럽다는 이씨는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주니 수험생에게는 정말 좋은 마실거리가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옛날 우리 조상들에겐 만병통치약이었고, 구황식품이기도 했다는 차의 효능은 우리 고전에 수두룩담겨 있단다. 동의보감에는 ‘머리를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소변을 좋게 하고 침독을 풀어준다’고 소개돼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영조가 비만인 세자를 걱정하자 신하가 우전차를 권했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 차가 정말 좋은 때입니다. 햇차가 한창 나오니까요. 가족이 주말에 티파티를 열어보세요.”
그가 차와 첫 대면한 것도 39년 전 딱 이맘때다. 부부동반 초대자리에서 나온 찻상. 그는 그때 맘속으로 투덜댔더란다. ‘손잡이 있는 커피에 케이크면 마시기도 먹기도 편할 텐데, 이 찻잔은 어떻게 쥐는 것일까’ 하고.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서도 그는 간장 종지만한 찻잔이 눈에 아른거려 차에 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차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고. 장맛보다 뚝배기에 반해 시작한 셈이다.
“차는 주말부부로 홀로 시집살이를 했던 젊은 시절 팍팍했던 내 생활의 오아시스였습니다. 또 지금 이 나이에도 쓸모가 있도록 내 안의 재능을 일깨워 준 고마운 길라잡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차 요리도 개발하게 됐고, 종가문화도 연구하게 됐다는 그는 지금 종가문화연구소장이며, 성균관 여성유도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차요리’ ‘차가 있는 삶’ ‘명문종가 사람들’ ‘명문종가를 찾아서’ 등 여러 권의 책도 냈다. 얼마 전에는 소박한 사계절 찻자리 데코레이션을 소개한 ‘찻자리 디자인하다’도 펴냈다. 티 스타일리스트라는 직함을 더하게 된 그는 특히 중년층에게 “내가 뭔가 싶어 울적해진다면 차를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