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프리즘’을 통해 본 꿈·사랑·그리움… 오은주 소설집 ‘하루 이야기’
입력 2010-05-28 17:39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싱싱한 젊음과 높다란 꿈, 가슴 설레는 사랑 등 그 무엇도 시간의 흐름에서는 빛이 바래지고 어느 한 순간 아련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회한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소설가 오은주(53)의 소설집 ‘하루 이야기’(문학나무)에는 평범한 이웃들의 고단한 삶을 시간이란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 중·단편 6편이 실려있다.
중편 ‘하루 이야기’는 하루 24시간을 시간대별로 나눠 매 시간마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24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증 심근경색에 걸려 전문의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는 30대 중반의 남편은 퇴근한 아내를 깊이 껴안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를 건강한 시절의 냄새를 맡는다.
부모의 산소를 찾은 70대 남성 김세철은 해질녘의 불안하고 서글픈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자 무섭고도 무거운 시간의 흐름을 절감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몸매를 유지하려고 지난 26년간 한 번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한 40대 여배우 윤미애, 중풍에 걸린 남편이 집안에 들어 앉자 자신의 몸과 마음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60대 주부 경옥씨도 시간의 흐름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나약한 우리들의 쓸쓸한 자화상이다.
단편 ‘잠열(潛熱)’은 9년을 함께 살다 헤어진 지 20년 이 된 50대 남녀가 수녀가 된 딸의 봉쇄 수녀원 종신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 산레모까지 함께 동행하고, 딸을 통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백 스테이지’는 며칠 후면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47세 여성이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을 찾아 20대의 뜨겁고 화려했던 기억을 더듬는 내용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시간은 그 흐름 속에 모든 것을 같이 실어간다. 상처를 낫게 하기도 하고,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리게도 하고, 사랑도 미움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중략) 시간의 막강한 힘은 우리에게 굴복을 강요한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