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언어에 대한 고집 센 시인의 고뇌… 고형렬 시집 ‘나는 에르덴조 사원…’
입력 2010-05-28 17:39
“이제 나는 고요를 키우지 않는다/소란을 나의 종(宗)으로 삼는다/눈이 어두운 나는 소란 속에/커다랗게 귀를 열어놓고 시를 쓴다/(중략)오늘이 아니라 어제부터 나는/소란 속에서 시를 쓴다 그러므로/나에게 소란만이 현실의 실증이다.”(‘결코 조용하지 않은 시에게’ 일부)
고형렬(56) 시인이 4년 만에 내놓은 일곱 번째 시집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창비)는 시(詩)에 대한 시인의 고뇌와 성찰이 도드라진다. 시력 30년을 넘기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해 온 시인이지만 그에게도 시라는 존재는 온전히 다가갈 수 없는 미완의 세계이다. 그래서 시인은 언어적 미완과 불완전성에 의탁해 시에 다가간다.
“나는…… 날개의 나는, 찢어지고 절망한다, 아 불완전한 문장을 지울 수만 있다면, 저쪽에 오롯이 그것들의 날개를 펼칠 것인데”(‘어느 날은 투명유리창의 이것만이’ 일부)
“시를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지우는 짓/핏속에 담아 감금하는 고통처럼/끝없이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영혼 반복의,/그 살아있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길 원한다/쌘드페이퍼로 살을 깎듯, 혼자 라식수술을 하듯/새벽까지 저 하늘에서 불을 밝혀놓고/언어의 꿈을 꾸는 저 기형의 한 남자를 보라,”(‘우스꽝스러운 새벽의 절망 앞에’ 일부)
시가 불완전한 것은 시를 담아내는 언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표제작은 시인의 이런 고뇌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이 문장은 성립하지 않고 시상이 전개되지 않는다/(중략)그러나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증명할 길이 없지만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중략)나는 이 사유 자체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말이 꼭 성립해야 하는가”
문학평론가 김종훈은 이를 두고 “그는 시간이 착종되고 문장이 뒤틀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장 속에 갇힌 자신을 환기하며 시 쓰는 현재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번 시집에는 식물의 세계를 동물적 감각으로 그려낸 시편들도 눈길을 끈다. “문득 수박줄기는 포복을 멈췄다,/더 갈까? 순이 뒤돌아본다 참 오래 한 일이지만 무작정 간다고 되는 법이 없는 것을 안다 잎에 가린 뿌리 쪽이 보이지 않는다 둥지를 틀고 머리를 감아올린다 저쪽에서 물 들어오는 소리 들린다”(‘수박’ 일부)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연은 저곳에 있고 모든 시인은 상아(喪我)와 소멸 속으로 사라진다. 나의 시 또한 그 자연에서 면피될 수 없다”라고 적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