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이야기] 로봇… 반도체… 스피커… 종이, 첨단 신소재로 뜬다
입력 2010-05-28 17:14
흔한 종이가 첨단 신소재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기록 매체로만 여겨졌던 종이가 전자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처음으로 밝혀지고 나서 부터다. 머지않은 미래에 종이 로봇, 초소형 비행체, 종이 반도체, 벽지형 스피커 등 고부가 가치 발명품 개발이 기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종이의 재발견이다.
종이는 식물(특히 목화)이나 나무에서 얻어지는 셀룰로오스 섬유를 판상으로 재조합해 만든 천연 재료다. 인하대 생체모방 종이작동기 연구단 김재환 교수팀은 이 셀룰로오스를 주성분으로 하는 종이에 전기 자극을 주면 부르르 떨린다는 사실을 발견, 2001년 국제학회에 처음 보고했다. 김 교수의 종이 연구는 호기심과 우연한 발견 덕분에 시작됐다고 한다. 어느 날 껌을 싸고 있는 은박지에 전기를 흘려 보냈더니 종이가 예상과 달리 휘는 게 아니라 떨림 현상을 나타낸 것. 어떤 물질에 전기를 가하면 운동(진동)이 일어나는 ‘압전 효과’와 종이 내부의 결정 구조와 비결정 구조 사이에 움직이는 전하를 힘으로 바꾸는 ‘이온 전이 현상’ 때문에 이러한 떨림이 생긴다는 것을 밝혀냈다. 김 교수는 이후 연구를 통해 종이에 나노미터(㎚) 두께의 전극을 입힌 ‘생체모방 종이작동기(Electro-Active Paper)’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종이는 가볍기 때문에 배터리를 탑재해 갖고 다닐 수 없다. 따라서 마이크로파를 사용해 원격으로 전원을 공급하고 구동하는 장치를 결합시키면 ‘나는 종이 로봇’을 만들 수 있다.
실제 연구단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종이 작동기 위에 마이크로파를 받아 직류 전원으로 공급하는 장치인 ‘렉테나’를 개발했다. 이 장치를 붙이면 무거운 배터리 없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어릴 적 접어 날렸던 종이 비행기를 원격으로 조정하는 일도 가능하다. 탐사·정찰용 초소형 로봇 등 ‘MEMS(초소형 전자기계 제작 공정)’와 벽지에서 스테레오 음을 내는 스마트 벽지 제조에도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렉테나가 아무리 얇아도 종이에 비하면 그래도 무겁다”면서 “현재 이 렉테나를 종이 위에 일체형으로 통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종이 위에 미세회로를 직접 그려넣는 미세가공기법을 이용해 0.15㎜ 두께의 렉테나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연구단은 또 셀룰로오스 섬유에 반도체 성질을 갖는 극소량의 ‘탄소나노튜브’를 혼합해 종이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했다. 종이 반도체 시대를 열 수 있는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