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공정택의 뇌물론
입력 2010-05-27 17:59
대가를 바라고 특정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는 게 ‘뇌물’이라면 그것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긴 생명력을 가졌다고 봐야 할 듯하다. 가까운 조선조만 하더라도 왕조 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뇌물 수수가 성행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뇌물 사건만 무려 2962건이다. 뇌물사범은 사면령에서도 제외하고, 뇌물죄는 오늘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보다 엄하게 다스렸는데도 근절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뇌물을 인정(人情)이라고 불렀다는 게 재미있다. 사람 사는 정이라는 의미인데, 아마 받는 쪽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음직하다. 요즘에 작은 정성을 의미하는 촌지(寸志)나 미의(微意), 혹은 떡값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뇌물의 액수는 얻어낼 가치의 크기에 비례해서 책정되기 마련이다. 승진이나 공사 수주를 위해 바치는 뇌물은 높은 자리일수록, 규모가 클수록 액수가 불어난다. 항간에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의원에게 건네는 돈이 최소한 1억원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액수만 높여서 될 일도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사건 공판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용전(用錢)의 효과’라는 말을 했다. 재계에서 은어처럼 쓰이는 용어라는데 청탁 내용에 비해 너무 많은 액수를 주면 부담스러워 받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적정한 선에서 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역시 뇌물의 고수라 할 만하다. 재직 당시 1억46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공씨는 지난 24일 법정에서 부하간부한테 받은 100만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모 전 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공씨는 김 전 국장이 자신에게 100만원을 준 사실을 인정하면서 “100만원의 의미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에 “명절을 잘 쇠라는 뜻으로 알았다. 어떤 사람이 100만원을 주며 잘 봐달라고 하겠느냐”고 답했다.
하긴 다른 부하간부는 수천만원씩 가져오는데 기껏 100만원을 받고 인사에서 봐줄 리가 없겠다. 그런 점에서 공씨의 주장은 옳은 듯도 하다. 그런데 서울의 모든 초중고교를 관할하는 교육계 수장이 100만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했으니 아이들이 곧이곧대로 들을까 겁이 난다.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서라도 “그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했으면 좋으련만.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