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중국은 대답해야 한다
입력 2010-05-27 17:59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직후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만난 한반도 전문가에게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할까”라고 물었더니 ‘픽’ 웃으며 한마디로 “질질 끌 것”(drag on)이라고 말했다. 그도 중국식의 느리고 굼뜬 ‘만만디(漫漫的)’라는 표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은 아마도 이불 속에서 뭉갤 것”(dally in bed)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 속엔 중국이 의도적으로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짙었다. 역시 중국은 천안함 침몰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도 냉정과 절제를 강조하며 ‘뭉개고’ 있다.
요즘 워싱턴에선 천안함 사태 브리핑을 하면 ‘책임 있는’이란 표현이 수시로 등장한다. 국무부 브리핑에서도 그렇고,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그렇다. 이 표현은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데 자주 이용된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나, 천안함 사태에 대해 설명할 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라는 표현을 상투적으로 쓰곤 했다.
워싱턴의 유수한 싱크탱크들이 주최하는 한반도나 동북아 현안을 다루는 세미나에서도 중국을 얘기하면서 ‘책임 있는 역할’이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중국 관련 세미나는 다른 어떤 국가나 현안들 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중국의 비중이 크고, 미국의 관심도 크다. 중국의 움직임이 미국의 생각과 행동에 민감하게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중국은 미국의 두 가지 대중(對中)정책, 즉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과 달라이 라마 문제에 대해선 신속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의 내부 문제이자 국제 관계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다 자기네 안보 이익과 관련이 있어서다. 위안화 환율 절상이나 이란 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자국 입장을 내세우며 국제사회의 압력을 버티고 있다. 둘 다 중국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관련이 있는 건 자명하다.
하지만 유독 북한 문제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번 천안함 사건을 보는 시각은 정말 해괴하다. 거의 모든 국제사회가 천안함 조사결과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데도 중국은 “아니올시다”다. “평가 중”이라는 말만 할 뿐 어정쩡한 태도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국익은 ‘현 상태 유지’일 것이다. 북한이 더 불안정해지거나, 붕괴될 조짐이 보이면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중국은 몰락 직전의 북한 경제를 도와 근근이 버티고 가는 상태를 아마도 가장 ‘안정적인 상황’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천안함 사건에 대해 주요국들은 한쪽 편에 서게 됐다. EU도 조사결과를 지지했고, 인도도 인정했다. G20 국가 중 중국 정도만 객관적 사실을 앞에 두고 어정쩡하다. 미국과 G2체제를 구축,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는 나라답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국제사회 차원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중국의 이익과 부합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이제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말해야 한다 한반도 정전협정의 당사자이기도 한 중국이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사항이 발생했는데도 지금같은 태도를 보이는 건 명분이 없다. 중국은 28일 한·중 정상회담이나 29∼30일의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국제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에 비쳐지는 중국의 위상은 경제 규모에 비해 아직은 한참 낮다.
중국이 21세기 국제질서를 이끌어갈 G2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작금의 모습으론 안 된다. 자국 안보·경제적 이익이 걸려있거나, 민감한 내부문제에는 재빠르게 반응하면서도 국제사회가 명분 있게 추진하는 사안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모습으론 명분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북한과 형제국가라는 특수관계이긴 하지만, 한국과는 이명박 정부 들어 전략적 동반자 외교관계를 맺었다. 한국 정부와도 전략적으로 대화하길 국제사회는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