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배아는 인간 아니다” 헌재, 연구목적 허용 생명윤리법 합헌 결정

입력 2010-05-27 21:53

초기 배아(胚芽)는 인간으로 볼 수 없고, 연구 목적의 배아 이용을 허용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배아란 난자와 정자가 수정돼 첫 번째 세포분열 이후 태아가 되기 전까지 상태다.



헌재는 27일 남모씨 부부와 이들이 만든 배아 등 청구인 13명이 “연구 목적의 배아 이용을 허용한 생명윤리법 16조 1·2항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낸 위헌 확인소송에서 배아들의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헌재는 “배아들은 수정이 됐다는 점에서 생명의 첫걸음을 뗐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헌법소원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또 “모체에 착상되거나 원시선(나중에 척추로 자라는 부분)이 나타나지 않은 배아를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며 “착상 전 배아를 인간으로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회적 승인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초기 배아는 기본권의 주체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어 헌법소원을 제기할 ‘청구인 적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논리다. 헌재는 그러나 “인간으로 발전할 잠재성이 있는 초기 배아의 헌법적 가치가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에 이용되지 않는 배아는 5년 동안 보존하고 이후엔 폐기토록 한 생명윤리법 규정에 대해선 전원일치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사회적 비용과 의료기관의 관리소홀 가능성을 고려하면 보존기간을 5년으로 정한 것은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청구인들은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이용하도록 한 생명윤리법 조항은 배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생명윤리법은 시술 후 남은 배아를 난치병 치료 등을 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수정 후 14일이 지나 원시선이 나타난 배아는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린 배아들은 2004년 12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생성돼 보관됐다.

기독교계에서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반대했다. 대한기독병원협회 박상은 회장은 “인간 배아는 하나님 형상을 닮은 생명이고 수정 순간부터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며 “헌재가 다수결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황한호 서울기독대학교 교수도 “배아를 인공수정에 활용하고 남은 배아를 폐기하거나 연구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기독교 생명윤리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초기 배아의 생명과 기본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