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미래 한강에 묻다-현장 목소리] “가뭄 걱정 사라져” VS “강 살리자고 농민 죽이면 되겠나!”
입력 2010-05-27 21:21
4대강 사업은 강변 둔치에서 농사짓는 주민을 희비 쌍곡선으로 갈라놓았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받고 농사를 짓던 농민은 2년간 영농수입을 보상받았지만, 무허가나 소작농은 아무런 보상 없이 쫓겨났다.
정부는 이 기회에 비닐하우스 등 하천 내 경작지를 모두 자연 상태로 복원키로 했다. 유기농의 경우에도 유기물, 질소, 인의 유출로 수질에 영향을 미치므로 금지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한 교수도 “하천부지에서는 시설 재배를 금지하고 불가피할 경우 수질오염도 피하고 홍수에도 피해가 없는 땅콩이나 곡식의 경작만 허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갈 곳 잃은 고령 개진감자의 눈물
오늘도 굉음에 잠을 깼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끄러운 중장비 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 같습니다. 덤프트럭과 굴착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 다녀간 땅엔 바퀴 자국이 선명합니다. 흙먼지가 날아와 제 몸에 달싹 붙어 버립니다. 턱턱 숨이 막힙니다.
저는 감자입니다. ‘개진감자’.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입니다. 낙동강 박석진교 아래 강변에 50년 가까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죠. 좋은 물, 비옥한 사질토, 내리쬐는 햇볕. 이만큼 살기 좋은 곳은 제겐 없습니다.
갈 곳을 잃다
그런 제가 갈 곳을 잃었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한다며 제 집을 생태공원으로 만든다는군요. 매일 불도저 한 대가 감자밭 옆을 훑고 다닙니다. 언제 밭이 파헤쳐질까 두렵기만 합니다.
저를 키워주는 아버지(정상준·44)의 한숨이 늘었습니다. 저를 어루만지며 “이제 어디 가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며 눈물을 글썽이곤 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 동네 농민들은 조그맣게나마 자기 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열심히 지은 만큼 선물을 주는 금싸라기 땅이었습니다. 1995년 재해 방지를 이유로 시가의 반도 안 되는 보상금에 농지는 국가에 귀속됐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땅을 귀속시키지만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한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시작되면서 약속은 일방적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천부지 점용허가권이 있는 농민에게만 평당 1만1500원의 보상을 해준답니다.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그나마 점용허가권이 없는 농민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농민들은 외칩니다. “약속이나 하지 말든지… 그냥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쩌란 것이여!”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아버지는 올해 초 4대강 공사 저지 시위에 붉은색 머리띠를 두르고 참여했습니다. 그 뒤 과격시위자로 분류돼 경찰에 입건되더군요. 아버지의 첫째 딸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구에서 한의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한 학기에 500만원이 넘어도 감자농사 열심히 지으면 애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가 시작된 후부터 첫째 딸의 걱정이 커졌습니다. “이제 아빠 돈 못 버는데 학교 그만 다녀야 안 되겠나”라고 딸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팹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계속 저를 키울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죠. 며칠 전 저녁 늦게 아버지는 “4대강 살리기, 필요하면 해라. 대신 농민 죽이며 4대강만 살리면 되겠나”라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최근 아버지는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최소한만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바람은 객토(客土)입니다. 질 좋은 사질토를 앞으로 농사를 지을 곳에 옮겨 달라는 겁니다. 새로운 농지의 지력을 끌어올리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노력을 줄이는 데 도움을 달라는 거죠.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얼마 전까지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집을 옮긴 부여 방울토마토의 한탄
저는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이네요. 하지만 저 역시 남모를 고민이 있답니다. 충남 논산시 영동면에 뿌리를 박고 있는 방울토마토입니다.
이곳은 제가 살던 곳이 아닙니다. 지난 20년 동안 금강 건너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 살았습니다. 20년 전 아버지(백용현·50)가 경작을 시작한 이래 세도면은 국내 최대 방울토마토 생산지였죠.
수확 때만 되면 아버지의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세도면은 방울토마토에겐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 하천부지라 물이 맛있고 풍부한데다 흙에서는 영양분이 샘솟았죠. 제 몸의 당도(糖度)가 높아지는 만큼 사람들은 저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평균 6000만원의 순이익을 거뒀습니다. 그는 항상 제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정도 평안했죠. 여섯 식구 함께 사는데 3형제 학비에 온 가족 생활비를 대도 시골에서 살기는 넉넉할 정도였으니까요.
이사(移徙)
걱정 없이 살고 있던 지난해 7월 어느 날,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정든 세도면을 떠날 수밖에 없었답니다. 발이 떨어지질 않더군요. 이사가 내키지 않은 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땅을 처음부터 일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살던 곳은 이미 파헤쳐져 공원과 자전거도로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사를 하면서 보상비를 받았습니다. 1억400만원. 주변 사람들은 ‘그 정도면 됐지유 뭐’ ‘1억이 어디여. 마이 받았구먼’이라고 하지만 모르는 소립니다. 땅 2200평을 다시 사는 데 보상금의 대부분(7000만원)을 썼습니다. 거기에 토마토 농사를 짓는 데 중요한 개폐기(비닐하우스 공기를 환기시키는 기구)와 부직포(겨울철 농지를 덮어 온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 등 농사지을 준비에만 6000만원이 들었습니다. 이사하지 않았다면 안 써도 되는 돈을 쓸 수밖에 없다보니 첫 해부터 적자입니다. 아버지는 “적자 난 건 15년 만에 처음이여”라고 가슴을 칩니다.
가만히 놔두지 왜 이사는 하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성동면의 흙은 점질토입니다. 세도면의 사질토는 모래가 섞여 있는 흙이라 알갱이 사이에 공간이 있어 물이 잘 스며듭니다. 제가 잘 자랄 수 있는 흙이죠. 하지만 점질토는 물이 잘 통하지 않아 살기가 쉽지 않네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엔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아 더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성동면으로 옮긴 후 첫 농사의 순이익은 1000여만원. 평소의 6분의 1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수확이 줄어도 어떻게 이렇게 줄 수가 있는 겨… 돈 들어갈 덴 많은데 자식들을 다시 뱃속에 넣을 수도 없고 미치겄구먼”이라고 한탄했습니다.
요즘 고민이 많아서인지 아버지의 얼굴은 더 홀쭉해지고 몸은 왜소해진 것 같아요. “멀쩡한 땅에 왜 습지를 만들고 자전거도로 만든다는 건지 모르겠네”라며 속상해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립니다.
#마실 물 많아져 기쁜 창녕 길곡 고추
요즘 우리 동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분주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커다란 화물차가 흙을 잔뜩 싣고 들락거립니다. 동네 어귀엔 ‘4대강 살리기 사업 낙동강 15공구’라는 커다란 글씨가 내걸렸습니다. 강 건너 경남 함안과 우리 동네 사이에 보(洑)가 만들어진다죠. 제 몸엔 매일 먼지와 흙이 엉겨 붙지만 동네 주민들은 싱글벙글입니다.
전 이곳 길곡 고추밭에서만 20년째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자라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이곳 농민들은 그동안 물 때문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고추밭은 강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대가 높지 않죠. 예전엔 여름 장마철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낙동강 물이 넘쳐 밭을 덮치곤 했습니다. 한 해 고추농사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10여년 전 강변에 둑이 설치된 후 물이 넘치는 일은 없네요. 하지만 매년 심해지는 가뭄이 저를 또 힘들게 합니다. 최근 몇 년간 강수량이 줄어 특히 갈수기에는 물이 부족했습니다.
이젠 물 걱정 없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제가 사는 곳 앞에 만들고 있는 함안보는 이곳 주민들의 물에 대한 걱정을 단번에 날려줄 것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 역시 모두 크게 기대하는 눈치고요. 가장 좋은 건 제가 아무 때나 물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실 수 있다는 겁니다. 함안보에 물을 가둬두면 가물어도 무리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니까요.
아버지(김종택·55)는 요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함안보 덕택에 물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이익 아이가”라며 좋아합니다. 옆 고추밭에서 농사하는 아저씨도 “갈수기 때 밤에 잠도 못 자고 물을 퍼 날랐는데 이제 물 구하기가 쉬워지는 거 아녀”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지난해엔 심지어 물이 없어 농사를 못한 주민까지 있었으니 심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이곳 주민들은 “안 그래도 보를 만들어 달라고 군청에 요청할 작정이었는데 나라가 알아서 만들어주니 얼마나 좋아”라며 연신 웃음꽃을 피웁니다.
특별취재팀=임항 환경전문기자, 조국현 기자(이상 사회부) 권기석·김원철 기자(특집기획부), 김현길 기자(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