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설동순 (20) 선교한다 해 고추장 보냈지만 수차례 떼여
입력 2010-05-27 17:25
고추장 팔아서 돈을 벌기도 많이 벌었다. 그 돈으로 애들 공부시켰고,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하나님 일에 주저 없이 헌금을 낼 수 있을 때 가장 기쁘다. 물론 그러느라 정작 나 자신을 위한 비싼 옷, 비싼 물건은 사 본 적이 없다. ‘사치’라는 것이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행복감을 위해 큰 돈을 쓰는 일이라면, 선교는 나만의 사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나를 허술하게 보는 사람들도 적잖게 만난다. 10년 전쯤이었다. 목사님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고추장을 싸게 공급해 주면 그걸 팔아 선교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응낙했다. 목사님은 곧 트럭을 빌려 와 고추장 몇 천만원어치를 수차례에 걸쳐 실어갔다. 그런데 그 후 연락도 없고 전혀 돈을 보내지 않았다. 한동안은 전화를 해도 피하더니 나중에는 미안하다며 도저히 사정이 안 된다고만 했다.
이런 비슷한 일은 수도 없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잘 해보려다 낭패를 봤겠거니 할 수 있다. 한번은 어느 정치인이 연락을 해 왔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분명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국회 바자에서 고추장을 팔겠다며 “수익금을 좋은 데 쓰려고 하니 싸게 주십시오” 하기에 도매가로도 2000만원어치가 넘는 고추장을 트럭 세 대에 실어 서울까지 가져다 줬다. 고스란히 떼였다. 알고 보니 순창에 우리 말고도 당한 가게가 더 있었다.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던 오빠는 노발대발하며 당장 수배를 내린다 했지만 나는 “오빠, 을매나 오지게 어려우면 나 같은 사람 돈을 떼어 먹겄어. 불쌍허다 치고 잊어버립시다” 했다.
미자립교회 몇 곳을 꾸준히 돕다 보니 도와달라는 곳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렇다고 전에 후원하던 것을 끊으려 하면 그간의 좋은 관계가 틀어져 버리곤 한다. 편지로 도움을 호소해 몇 차례 돈을 보내줬던 교도소 재소자는 처음에는 “정말 이런 교인이 있으시군요!”라는 편지를 보내더니, 돈이 끊어지자 말로 전할 수 없는 욕설과 협박을 담은 편지를 연달아 보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과연 돈으로 선심을 써 온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위축됐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기도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말없이 위로해 주셨다.
2007년쯤, 남원의 한 목사님이 전화를 해 왔다. 농촌 노인들이 다니는 작은 교회인데 어렵게 흙벽으로 교회를 신축했지만 돈이 부족해 지붕을 못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고추장 두 트럭을 도매가로 보내줬다.
그런데 그 일이 계기가 돼 국민일보에서 취재를 왔고 내가 2007년 10월 15일자에 ‘크리스천 CEO’로 소개됐다. 또 그 취재기자의 소개로 국민일보 비전클럽 회원이 됐다. 처음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건물 12층에서 열린 비전클럽 모임에 갔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두근두근하며 홀에 들어서니 조용기 목사님을 비롯한 훌륭하신 목사님들, 기업 대표들, 국회의원, 장관 등이 가득 앉아 있었다. “나같이 못 배운 시골 아낙네를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세우시는구나!”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활동을 통해 진흥문화사 박경진 장로님, 탤런트 정영숙 권사님 등 신앙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