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전군에 전투태세 명령’ 소식에 환율 몇분새 30원 급등… 속수무책 딜러들 ‘패닉’
입력 2010-05-25 21:58
외환 딜링룸에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중은행의 딜링룸은 천안함 진상 발표 이후 고조되는 북한 리스크의 정도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25일 오전 8시40분 서울 태평로2가 신한은행 딜링룸.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열기도 전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날 종가보다 9.5원 올랐다는 소식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환율의 향방을 묻는 전화였다.
오전 9시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열자 수출업체들이 보유한 달러 매도 주문은 거의 없는 가운데 대금 결제를 앞두고 있는 수입업체들이 서둘러 달러를 사겠다는 주문만 폭주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군에 전투태세를 명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율은 몇 분 사이 30원 가까이 폭등했다.
한 딜러가 200만 달러를 사달라는 수입업체와 통화하는 도중에도 1.8원이나 올랐다. 외환 딜러들은 거듭 양해를 구하며 매수 주문을 수정했다. 딜러들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평소에는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실수에도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에어컨은 물론 책상 밑에 놓인 개인용 선풍기를 최대 회전 속도로 틀어놨으나 이마와 등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막지 못했다.
오전 10시52분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7원 오른 1271원 선을 돌파하자 외환 당국이 적극 개입에 나섰다. 지난해 3월 16일 기록한 장중 변동 폭인 54.50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자 환율 방어에 나선 것이다. 불과 8분 만에 환율은 15원 급락했다. 기록적인 수준의 변동 폭뿐 아니라 달러화가 예측하기 어려운 대외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딜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오후 장 들어 1265원 선에서 공방을 벌이던 환율은 역외 세력들의 환투기성 거래가 몰려들면서 장 마감 30분을 남겨놓고 1277.0원으로 상승했다. 일부 수출기업들은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현재 거래되고 있는 매매가보다 2∼3원 더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해 달라며 자동주문을 요구했다.
외환 당국이 수억 달러를 내다 팔았고 환율은 다시 1250원 선으로 떨어지면서 이날의 환율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제야 딜러들은 모니터 한쪽에 놓인 커피로 목을 축였다. 커피는 이미 식은 지 오래됐다.
딜링룸에서는 시장 안정화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외환 당국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고 외환시장이 수급 상황보다 과열된 측면이 있는 만큼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1300원 선까지 급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당분간 1250원 선에서 공방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