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글로벌 ‘병세’ 지켜보며 과잉 변동성 다스리기
입력 2010-05-25 22:00
“정책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 입에서 신음처럼 새어나온 말이다. 상비약과 처방은 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가 홍역을 치르고 있으니 ‘병세’를 지켜보되 급작스러운 반응(변동성)은 적극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선 25일 장 막판에 정부가 30억 달러를 내다 판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의 시장 변동성 관리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날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통해 “과도한 불안심리가 오래 지속되면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가격이 급변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시장 안정에 적극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한은의 고민은 이렇다.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사상 최대인 2788억 달러로 환율 방어 실탄은 넉넉하다. 과거 변동성이 커질 경우 20억∼30억 달러씩 개입한 것을 감안하면 한 달 내내 시장 투기세력과의 싸움에 나서도 보유 외환 2000억 달러는 지켜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 급등세만 보고 시장에 손을 쓸 수 없는 게 문제다. 국내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글로벌 불안심리 고조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우리 실물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흔들린 게 아니고, 심리 요인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 현재로선 시장별로 어떻게 전이되는지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부 대응책도 시장 변동성을 줄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관리 대상은 외환시장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섣부른 제도적 개입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독일은 최근 빈손으로 없는 주식을 미리 파는 행위(공매도·空賣渡)를 막았다가 증시와 유로화 쇼크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부와 한은은 이날 외환시장 구두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이 지나치게 오르자(원화가치 급락) 달러 곳간을 풀었다. 환율 외에 실물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물가, 수출, 원자재 수급 등에서의 쏠림 현상도 경제금융 합동대책반을 통해 대응할 방침이다.
국내 시장 조치 외에 국제 신용평가사 등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홍보 라인도 강화했다. 외화 조달 금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국경제 평판 리스크를 사전 관리하기 위한 조치다.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를 방문해 한국 경제 설명회를 가졌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