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백화점의 변신 혹은 굴욕
입력 2010-05-25 17:54
물건 파는 곳이 많다. 마트, 디파트먼트, 슈퍼마켓, 아웃렛, 체인스토어, 아케이드, 리테일스토어, 숍, 부스, 스탠드, PX, 몰…. 이 가운데 왕자는 디파트먼트, 즉 백화점이다. 잠시 ‘데파트’니 ‘쇼핑센터’로 부르기도 했지만 고색 창연한 근대의 이름은 그대로다. 백화점은 별명도 많다. 욕망의 환기통, 소비의 전당, 상업의 대가람, 입장료 없는 유원지…. 모두 화려한 도시의 상징이다.
백화점의 기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봉마르셰다. 화려한 장식과 첨단설비로 살롱의 이미지를 풍겼다. 봉마르셰 신관은 에펠탑으로 유명한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이 맡았다. 천장의 유리에서 은은한 빛을 뿌리는 방법으로 상품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것도 그의 솜씨였다. 사람들은 박물관의 유물을 보듯 고양된 마음가짐으로 점포를 순례하고 물건을 사들였다.
영국은 1863년에 설립된 휘틀레이가 역사에서 앞서지만 품격과 전통에서는 우리가 흔히 ‘해롯’으로 부르는 해러즈가 앞선다. ‘여기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Omnia Omnibus Ubique) ‘또다른 세계로 오십시오’(Enter a different World)라는 슬로건과 세계적인 이벤트로 꼽히는 정기세일로 유명세를 탔다. 해러즈는 이달 초 카타르 투자청 산하 카타르 홀딩스에 매각됐다. 오일 달러의 위력을 새삼 확인했다.
백화점은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발전은 미국이 주도했다. 이름도 바뀌었다. 프랑스가 ‘Grand Megasin’(커다란 상점), 영국은 ‘Universal Provider’ 혹은 ‘Big Store’로 쓰다가 미국에서 ‘Department Store’가 됐다. 영화 ‘34번가의 기적’에 나와 널리 알려진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그들의 실용주의에 맞춰 부문별 조직을 만들고 기능성을 강화해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1904년에 설립된 일본의 미쓰코시도 미국식 백화점을 흉내냈다. 우리나라는 1929년 미쓰코시 경성지점이 들어선 이래 현재의 신세계로 이어졌다.
이 한국의 간판 백화점이 할인점에 입점키로 했다고 한다. 오는 7월 신세계 패션매장이 이마트 성남 태평점에 더부살이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세계와 이마트가 같은 집안이긴 하지만 도심에서 뽐내던 그 우아한 자태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신이다. 인터넷 판매, 통신판매 등 새로운 마케팅 기법의 등장으로 백화점의 판매력이 약화되고 있는 터라 신세계의 변신이 주목을 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