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창동 감독, 칸영화제 한국영화 사상 첫 각본상
입력 2010-05-24 19:24
이창동(56) 감독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은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63회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경쟁부문 각본상의 주인공이 됐다. 팀 버튼 심사위원장의 호명으로 무대에 오른 이 감독은 “팀 버튼 심사위원장과 모든 심사위원께 감사한다. 이 영광을 함께한 배우들과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시’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현지 언론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 황금종려상이나 여우주연상에 대한 기대까지 갖게 했다. 각본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주변에서 다소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당사자인 이 감독은 “각본상은 영화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욱 감동스럽다”고 답했다. 그는 “영화는 올림픽처럼 기록을 내고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기대해주신 것만으로도 매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윤정희가 수상에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여우주연상은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기자들이 연기에 호평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상을 못 받으신 윤정희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제 이름이 불리는데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이 감독은 “마음을 비우고 관객들과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면 언젠가 좋은 날도 있을 거라 믿는다”면서 향후 수상 가능성에 대해 여지를 남겼다.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전리’로 등단한 이 감독은 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97년 ‘초록물고기’로 데뷔해 백상예술감독 작품상, 신인감독상, 각본상, 캐나다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등을 받으면서 입지를 굳혔다. 2002년에는 사회부적응자와 중증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이 감독과 칸의 인연은 99년 ‘박하사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영화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그는 2007년 ‘밀양’을 발표하며 다시 칸을 찾았다. ‘밀양’은 이 감독이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전도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칸을 방문했던 그는 올해 베테랑 배우 윤정희를 16년 만에 현업에 복귀시킨 ‘시’로 직접 트로피를 거머쥐게 됐다.
한편 황금종려상은 아핏차퐁 위세라타쿤 감독의 태국 영화 ‘엉클 분미’에 돌아갔다. 아시아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나온 것은 1997년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와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가 공동수상한 이래 13년 만이다. 올해 칸 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성장세가 눈에 띄었다. 경쟁부문 19개 작품 중 6개가 아시아 영화였으며 7개 본상 중 황금종려상과 각본상을 아시아 영화가 가져갔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시’는 국내 개봉 열흘째인 23일 기준 9만655명의 관객 수를 동원 중이다. 초반에 저조했던 흥행이 이번 수상으로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