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천안함 대국민담화] 신뢰 깨진 ‘햇볕’ 걷어내고 당한 만큼 갚아준다

입력 2010-05-24 22:12


이명박 대통령의 24일 천안함 사태 관련 대국민 담화는 기존 남북 관계가 전환점을 맞았음을 예고했다. 담화 첫머리에 등장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용어 자체를 이 대통령이 직접 넣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천안함 이전과 천안함 이후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했다.

대국민 담화에는 대북 제재 방안들이 포괄적으로 망라돼 있다. 이른바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원칙이다. 이를 청와대는 북한의 추가 도발 및 대남 위협 행위를 선제 관리하는 안보태세 구축, 북한의 영해·영공·영토 침범 시 즉각 자위권 발동, 남북 경협 및 대북 지원과 상호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연계 등이라고 설명했다. 개성공단이나 영·유아 지원 같은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면 남북 교역 교류는 전면 중단됐고, 군사적 조치들도 강화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북한 제재도 조만간 가시화된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북한과의 교류·협력 정책이 대북 봉쇄정책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은 담화에서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등을 거론하며 “그동안 우리는 오로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간절한 염원 때문에 북한의 만행을 참고 또 참아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도발→우리의 반격→북한의 또 다른 도발→한반도 긴장 고조→경제적 타격’이라는 악순환 우려 때문에 우리 정부의 양보가 이뤄져 왔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우려해서 참는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모든 것을 좋은 식으로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또 다른 위기상황에 대한 각오도 돼 있다”고 했다.

적극적 억제 정책이 실시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핵심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은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소한의 상호주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던 것 아닌가”라며 “(햇볕정책의) 폐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대통령이 전면적인 남북 대결구도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를 더 이상 동북아의 위험지대로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했다. 천안함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름도 거명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 당국에 엄중히 촉구한다”며 ‘북한 당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개인을 거명하기보다는 김 위원장과 아들 김정은, 그리고 군부를 총칭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 위원장을 직접 지목하지 않음으로써 천안함 사태를 해결할 마지막 고리는 남겨두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 인정과 함께 핵무기를 포기하는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이번 조치들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