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상훈] 日 정국 흔드는 후텐마 문제
입력 2010-05-24 18:06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5월 23일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를 현내 나고시 헤노코의 미군 슈워브기지 연안부로 이전하는 방침을 공식 표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역주민은 강하게 반발하고, 여론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왜 미군기지 문제가 일본 정치의 최대 현안이 되었을까. 배경을 따져보자.
먼저 오키나와의 상징성이다. 오키나와는 근대 이후 일본에 강제 편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2차 대전 중에는 일본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쟁터가 된 곳이다. 약 3개월간의 지상전에서 희생된 일본인은 약 19만명, 그중에는 강제로 동원된 오키나와현민 9만4000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당시 오키나와현민 4분의1에 해당한다. 2차 대전 후 오키나와는 미국의 시정권(施政權) 하에 놓였고, 1972년에야 비로소 일본에 반환됐다.
둘째는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미군기지 때문이다. 현재 재일 미군기지의 약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고, 주일미군 약 4만명 중 60% 이상이 이 섬에 주둔하고 있다. 일본에서 차별하면 떠오르는 지역이 오키나와인 것이다.
이전 공약 못 지킨 민주당
미군기지의 존재는 오키나와현민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쳐왔다. 물론 기지는 지역주민에게 직장을 제공해왔고, 자신의 토지를 기지에 빌려주는 대가로 임대수입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군용기의 일상적인 소음이나 추락 사고, 미군에 의한 사고나 범죄, 환경오염 등 기지에 의한 피해도 심각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반미감정이 존재하는 오키나와에서 1995년 미군에 의한 초등학교 여학생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본격적인 미군기지 반환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에 미·일 양국은 1996년 오키나와의 대표적 미군기지로 주택지에 둘러싸여 소음이나 사고 위험이 지적돼온 후텐마기지를 전면 반환하기로 합의했고, 2006년에 나고시 헤노코 연안부를 매립해 군·민 공용의 공항을 건설하는 기본계획을 결정, 2014년까지 기지를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자민당 정권이 10년에 걸쳐 겨우 합의에 도달한 미·일 간 현안이 백지화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야당 시절부터 후텐마기지의 오키나와현 내 이전을 반대해왔던 민주당이 2009년 선거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워 정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공약 준수를 위해 8개월간 오키나와현 외 또는 일본 국외에서 이전 장소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결국 자민당 정권과 미국이 합의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하토야마 정권이 오키나와현민, 일본 국민과 미국까지 포함해 합의할 수 있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게 명백해진 것이다.
물론 안보 부담을 오키나와에만 강요해온 차별적 구조를 수정하고 일본 국민 전체가 안보를 다시 한번 생각하자는 계기를 하토야마 총리가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한다. 또한 동아시아 안보라고 하는 틀에서 미국과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란 점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토야마 총리에게는 너무나 큰 정치적 상처가 될 공산이 크다.
하토야마 총리 낙마설까지
연립여당인 사민당과 국민신당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후텐마기지 문제를 5월 말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해왔다. 하토야마 총리의 낙마가 거론되는 이유다.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했을 때 장기 정권이 되리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급변했다. 현 시점에서 하토야마 정권이 장기 정권이 되기 위해 남아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동안의 실정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것뿐이다.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 위해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참의원 선거 결과에 자신의 진퇴를 거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하토야마 정권의 미래가 암울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이상훈(한국외대 교수·일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