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영어교사 김상화씨, 시력 잃고 영혼의 눈 떴다

입력 2010-05-24 16:45


[미션라이프] 맑고 순수하다. 활력이 넘친다. 시각장애인의 표정과 말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인천 병방동 양촌중학교 영어교사 김상화(42)씨. 논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희망, 의지, 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때는 꿈 많은 처녀였지요. 공부도 할 만큼 했고요.” 과거를 떠올리던 김씨는 “하지만 시력을 잃은 뒤 인생이 모두 뒤바뀌고 말았다”고 말했다.

15년 전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 때다.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특허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며 야간에는 국제법무대학원에 다니며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별 증상 없이 서서히 시력이 떨어지다 캄캄한 암흑의 세계로 굴러 떨어졌다.

절망에 빠져 있던 김씨를 구원한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 7개월 동안 외부와 연락을 끊고 교회 기도실에서 살았다. “나름 열심히 살고 교회도 다녔는데 왜 나한테 이런 엄청난 시련이 닥쳤는지 하나님께 여쭈었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어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해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 뒤로 김씨는 옛날의 성격을 되찾았다. ‘그래, 김상화는 이미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녀는 1급 시각장애인 등록을 하고 점자와 흰지팡이 사용법 등 중도 실명자를 위한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몇 년 후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3차에 걸친 중등교원 임용시험 끝에 지난 해 3월 교사 발령을 받았다.

“비록 육신의 빛은 잃었지만 영혼의 빛을 얻은 셈이지요. 그리고 언제나 ‘살아 있음’에 감사해하고 있어요. 그 힘으로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고요.”

24일 학교에서 만난 김씨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신을 ‘지독한 운명과 화해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아직 미혼인 김씨는 “시력을 잃은 이후에서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하나님의 섭리 아래 제게 큰 시련을 주셨을 거라는 믿음은 한 번도 잃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각장애인용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어문장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빔프로젝터로 보여주며 학생들을 지도한다. 칠판 판서도 한다. 앞으로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행히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이 괜찮아요. 모든 게 감사하죠. ‘나같이 앞이 보이지 않은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너희들은 무얼 걱정하니’라고 말해 주면 ‘선생님 파이팅’이라고 아이들이 외쳐주곤 한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유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