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18년 케냐 안태경 선교사… 야곱의 마음으로 검은대륙 개척

입력 2010-05-24 17:47


성경 인물 중에 야곱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인생을 마감한 사람도 드물다. 남긴 것이라면 그저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뀐 것 외엔 없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미전도 지역에 뛰어든 사람이다. 수십 년 또는 평생 활동하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특공대’ 역할을 자처한다. 선교사에겐 오로지 전진만 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은 선교사의 모델은 아니다.

지난 1992년 순복음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활동 중인 안태경(49) 선교사는 자신은 “아프리카에서 야곱을 발견했노라”면서 “내 인생이 야곱의 당당함으로 마감될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안 선교사는 왜 하필 야곱을 ‘모델’로 꼽았을까.

“99년 선교센터를 현지인에게 송두리째 뺏기는 일이 있었어요. 졸지에 마귀가 되어서 쫓겨났지요. 그 사건은 선교사이자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위기였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선교사에겐 치명적인 사건이었어요.”

전면적인 신앙 위기 속에서 안 선교사는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시기나 한 걸까’ 하는 원초적 질문까지 던지며 하나님과의 씨름을 시작한다.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20대 초반에 하나님을 만나 많은 선교단체 활동을 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의 불길은 케냐 선교를 결심하게 했고 90년 단기선교 활동하면서 지켜봤던 케냐 어린이의 눈망울은 장기 선교를 결심하게 했다.

케냐로 이끌었던 하나님은 누구였던가. 그 하나님이 침묵하셨던 것이다. 마치 x, y가 너무 많아 풀리지 않는 인수분해 같았다. 어느 날 새벽, 안 선교사는 결심을 한다.

‘차라리 그냥 계시다고 믿자.’

그게 10년 전이었다. 새로운 사역의 장소를 찾아 애를 쓰면서 그는 믿음의 선진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외로운 영적 싸움에 인생을 걸었던 엘리야. 갈멜산에서 외쳤던 엘리야의 절규가 그의 절규가 됐다. “내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저들로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씨름 속에서 야곱을 읽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했던 사람이에요. 그의 삶은 팍팍했지만 다른 성경 인물에겐 없는 게 있었어요. 바로 신앙의 계승이었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일컬어지는 신앙의 계승자가 됐던 것이죠. 하나님의 집을 자기 안에 지은 것이에요. 자손을 통해 신앙을 계승하는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죠.”

선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적 자손에게 신앙을 계승하는 축복의 사람.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제자로 키워내는 사람. 선교센터가 목적이 아니라 신앙을 계승하는 것이 선교사의 일이었다.

이젠 ‘야곱적 신앙’을 알리는 사람으로 변한 그는 케냐 현지인 목회자들을 훈련하고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을 제대로 훈련시켜 건강한 아프리카 교회를 만드는 게 그의 임무다.

21일 만난 안 선교사는 “18년 간 총도 맞아보고 돌에도 찍혀보고 칼에도 찔려보고 고소와 사기, 배신도 당했고 교통사고도 여러 차례 당했다”며 “야곱처럼 주님께 맡기고 사는 고난의 달인이 되는 것이 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최근 안 선교사와 사모 김성은 선교사는 선교여정과 믿음의 고백을 담은 ‘아프리카에서 야곱을 만나다(금요일)’를 펴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