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설동순 (17) 틈틈이 개척교회 돕기… 사업은 날로 번창

입력 2010-05-24 18:04


다음 달 중순이면 매실 장아찌 담그기 좋은 때다. 그동안 여러 가지 매실로 장아찌를 담가 봤지만 가장 맛있는 게 재래종 청매실이다. 중간 크기의 단단한 청매를 골라, 소금물에 푹 절인 뒤 껍질을 벗기고 물기를 빼 고추장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는다. 청매가 고추장을 충분히 흡수 할때 새 고추장으로 갈아 주기를 몇 차례 하다 보면 맛이 든다.

매실은 참 기특한 과실이다. 여러 고추장 장아찌 중에서도 제 본연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추장과 잘 어우러져 색다른 맛을 내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남들보다 배운 것은 적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1등 아니면 2등, 그 안에 들자”고 마음을 먹었다. 기도도 열심히, 헌금도 열심히, 목사님을 섬기는 일도 열심히 하고만 싶었다.

가족에게 “교회에 갖다 주는 돈 반만 식구들한테 써 보지”하는 핀잔도 듣지만 고추장 사업을 벌인 뒤 한번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은 ‘돈 벌어서 선교에 보태겠다’고 서원했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분명했다.

또 국내 미자립교회들과 인도, 러시아 교회 개척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 것이 알려져서 국민일보에 소개됐고, 국민 비전클럽 회원이 됐고, CBS TV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했다. 그러면서 사업이 더 번창했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 분들이 믿고 고추장을 구입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삶의 어려움은 뜻밖에도 신앙생활 가운데 자주 찾아왔다. 어쩌면 나는 매실에게 좀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중심은 놔두고 받아들일 것만 챙기는 자세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지를 못했나 보다. 마음을 다해 뭔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중심을 잃을 만큼 확 기울어지게 된다. 그럴 때 시험이 찾아온다.

1997년쯤 일이다. 남원에서 순창으로 이사온 뒤 나는 집 가까운 한 교회를 열심히 섬겼다. 처음 목사님 댁을 찾아갔을 때, 목사님께서 상에 간장 종지 하나를 놓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시상에… 아무리 어려워도 목사님이신디’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원중부교회에 다닐 때도 그렇게 했던지라 여기서도 내 것 하나 살 때면 목사님댁 것 하나 더 사면서 챙겨 드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덕 볼라고 그라간디? 그냥 내 맘이 좋은게 하는 것이제’ 했다.

그렇지만 깊은 속마음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세상적인 서운함이 밀려왔다. 계기가 된 것은 사모님께서 어느 장로님을 도와주라고 부탁하신 일이었다. 건실한 사업가인데 잠깐 어려우니 돈을 빌려드리라는 것이었다. 교인끼리의 돈 거래가 꺼려졌지만 사모님 청이라 적지 않은 돈을 빌려드렸다. 그 얼마 후 집사님 여럿이 집에 찾아왔다.

“설 집사도 돈 빌려줬담서? 을매나 되는가? 글씨 우리 다 떼이게 안 생겼는가, 다 함께 고발할 참인게 같이 허세.”

알고 보니 빚이 산더미인데, 하나도 갚을 수 없는 상황이더라고 했다. “같은 교인끼리 그라믄 되간디요. 지는 좀 기다려 볼 참이어요” 하고 물리치기는 했지만 울화가 치밀었다.

그 직후에 사정을 모르는 목사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교회 종탑을 세우는 데 기부하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마음에 확 시험이 들어왔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