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58)
입력 2010-05-24 10:27
De Colores(데 꼴로레스)!
유대 율법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법은 오로지 흑이거나 백이다. 여기서 완고한 율법주의가 태어난다. 그러나 보라! 우물가의 여인이 물 한 바가지를 인연으로 해서 예수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다양성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의 여인들은 이방인에게 물을 줘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이제 그 여인이 예수에게 묻는다. 여자가 남자에게, 이방인에게 뭘 묻는다는 것은 제 3자의 문턱을 넘는 것이다. 완고한 율법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생님. 어디서 예배를 해야 합니까?”(요 4:19~26). 이 얼마나 불순한 물음인가? 지금껏 아무도 이런 걸 묻지 않았고, 물을 생각도 갖지 않았다. 남쪽의 예루살렘이거나 북쪽의 벧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때까지는 제3의 장소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흑과 백으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도 아니고 벧엘도 아니다. 남쪽 어디도 아니고 북쪽 어디도 아니다. 어디나 중심이고 어디나 변두리니, 바깥과 안쪽을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선과 악으로만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던가? 선이 아니면 악, 진실이 아니면 허위, 정의가 아니면 부정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세상 속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의미 아닌가? 바깥쪽과 안쪽을 구분하기 어려운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의 병을 연상케 하는 세상이 열렸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것은 아주 또렷하게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한 것과 같다.
“이제부터는 완고한 흑백 논리의 삶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다양하게 살아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조차 다양하라.”
교회와 성도는 모두 De Colores(데 꼴로레스)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