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 파헤치는 치열한 심리전… 연극 ‘루시드 드림’ 흡인력 있는 스토리에 연출 탄탄

입력 2010-05-23 18:03


‘루시드 드림’은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각몽(自覺夢)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인간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고 되고 싶은 대로 될 수도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현실에서 억눌린 욕망도 모두 실현시킬 수 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극단 청우의 연극 ‘루시드 드림’은 이런 질문을 구체화한 연극이다. 1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이동원(정승길 분)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김선규가 갑자기 죽는다. 김선규의 미망인은 후배 변호사 최현석(이남희)을 찾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건넨다. 이 책은 10년 전 최현석이 김선규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책에는 주인공 이름 대신 이동원의 이름이 채워져 있다. 흥미를 느낀 최현석은 이동원의 변호를 맡는다.

연극은 처음에는 법정드라마 형태의 스릴러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이동원의 살인 동기가 몹시 궁금해지는 시점에서 갑자기 심리극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럼에도 무대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이야기는 충분히 흡인력이 있고, 좁은 소극장 무대를 잘 활용해 감옥, 사무실, 침실 등으로 변화무쌍하게 활용하는 연출도 뛰어나다. ‘루시드 드림’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무대에 펼쳐놓는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밀도는 촘촘하다.

이동원은 “자신의 운명에서 살인이 허락되는지 알고 싶었다”고 동기를 최현석에게 밝힌다. 이 말은 최현석의 머리를 계속 맴돌고 결국 그의 숨겨진 본성을 끄집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극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다루고 그것은 스스로 억누를 수 없음을 말한다. 마지막에 가서 최현석와 이동원은 겹쳐진다. 격한 감정을 쏟아내고 난 뒤 고요해진 무대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작가와 연출이 던지는 메시지에 모든 관객이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덧대 인간과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이 연극의 의미는 충분하다. 6월 6일까지 정보소극장에서 공연된다(02-889-3561).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