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연탄과 동반자살

입력 2010-05-23 20:03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이다. 연탄은 과거 추위를 달래주고 외로움을 떨쳐주는 원천이었다. 연탄불의 뜨거운 열정은 밥과 국물을 만들어 우리네 이웃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천사이기도 했다.

연탄 속에는 진한 향수도 배어 있다. 연탄불로 달군 따끈따끈한 아랫목에서 형제들끼리 도란도란 나누던 얘기며, 연탄불을 갈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일들, 화덕에 빙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던 추억을 만들어줬다.

이 같은 연탄이 최근 잇따라 ‘죽음’에 이용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12일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남녀 8명이 연탄불로 동반자살한 데 이어 20일 부산에서도 남성 2명이 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면서 사회적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해 4월 한 달 동안 강원도에서 다섯 건의 동반 자살로 12명이 목숨을 잃은 ‘연탄불 동반 자살’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사업 및 투자 실패와 불안한 미래, 우울증, 신병 등을 비관한 끝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여러 명이 함께하는 동반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특히 유명인사의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와 일반인의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기도 한다.

동반자살을 공모하는 창구로 인터넷이 주로 이용된다. 2000년 이후 ‘자살 사이트’ 등 자살 관련 커뮤니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후 집중 단속 덕분에 사이트 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이나 블로그, 쪽지 등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자살 그 자체는 형법상 범죄가 아니지만 동반자살은 타인의 자살을 교사·방조하는 행위로 엄연히 범죄행위이다. 죽음과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동반자살 제의는 자살을 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한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남호철 차장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