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과 천진난만한 구성, 동심 속으로… 화가 정기호-소설가 박인식, 예술적 영감의 교유 30년 결실
입력 2010-05-21 18:51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는 재불작가 정기호(71) 화백과 ‘사람의 산’ ‘인사동 블루스’ 등을 펴낸 방랑의 소설가 박인식(59)씨가 만난 것은 30년 전이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피를 토하듯 그림을 그리는 정 화백을 우연히 만난 박씨는 그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에 감염돼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날아가 미술과 문학에 인생을 건 방랑객이 됐다.
두 사람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때로는 스승과 제자처럼, 때로는 가족 또는 친구처럼 예술적 영감을 나누며 교유했다. 박씨는 단편소설 ‘광화사, 새벽에 머리를 감다’에서 “바야흐로 천재 예술가의 예술혼에서 피어나는 후광을 목격한 나머지, (나는) 정기호씨의 천재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에 사명을 가진 전도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고 적었다.
3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인연이 서울 공평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24일까지 ‘정기호 회고전’을 여는 것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박씨가 기획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그림 그리기에 미친 화가라는 뜻을 담아 ‘광화사(狂畵師) 정기호의 美치도록’으로 정했다. 정 화백이 평생 작업한 그림 3000여점 중 50여점을 골라 1, 2층 전관 벽면을 가득 채웠다.
붉게 채색된 6·25전쟁 그림, 원초적인 생명력을 그린 1970년대 ‘태’ 시리즈, 동심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 근작까지 출품됐다. ‘천진난만한 아이, 벌거벗은 여인’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색과 선의 율동감으로 되살리기도 하고, 짙은 푸른빛과 황톳빛을 배경으로 피카소의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파리 갤러리아쿠 전속 작가인 정 화백의 그림은 화사한 색채와 천진난만한 구성으로 관람객을 유머와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파리1대학 교수인 막스 블룸버그는 “정기호는 감각의 왕자, 유희적 현대미술가로서 우리로 하여금 더 멋진 세상을 엿보게 한다. 그림에서의 어린 왕자가 있다면 바로 그일 것”이라고 평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백발을 흩날리며 하루 수십장씩 스케치를 하는 정 화백이나 휴대전화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떠도는 박씨나 세상일에 별로 욕심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전시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각계각층 관람객이 몰려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순수한 이미지의 작품을 보면서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기회이기 때문이다(02-3210-007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