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에큐메니컬 운동 펼쳐온 박상증 목사
입력 2010-05-21 17:17
박상증(80) 목사. 1960∼80년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활동한 몇 안 되는 국내 인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간사, 세계교회협의회(WCC) 간사,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 원장을 역임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거쳐 지금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거창한 이력 때문일까. 그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91년 이제는 고인이 된 아내 이선애 목사와 함께 서울 갈현동 한 조그만 지하 건물에서 갈현성결교회를 시작했다. 개척 멤버는 박 목사 부부 외에 10여명의 주민들이었다. 아내는 반주와 성경 공부를 맡았다. 부족한 교회 재정은 박 목사가 기사연으로부터 받는 월급으로 충당했다.
그는 철저히 ‘평신도 운동’ 차원에서 목회에 접근했다. 성직자 위주의 목회는 초대 교회의 모습과도 맞지 않다고 봤던 것이다. 성경 공부를 강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목사는 “지금은 평신도의 신학적 문맹이 제도화됐다”고 지적했다. 60년대만 해도 한국 교회 내에 평신도 운동이 순수한 문화로 자리하고 있었지만 교단 위주로 바뀌면서 이 문화가 사라져 버렸다는 설명이다.
새벽기도회도 없앴다. 이 때문에 초창기엔 교인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새벽기도회보다 가정예배가 더 바람직하다고 본 이유도 있지만 설교 때문이기도 했다. 박 목사는 10분짜리 설교를 준비하는 데 보통 15∼20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매일 새벽기도회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목회 현장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한국 사회를 향한 책임의식을 한국 교회가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 의료를 통해 사회변혁을 선도했던 한국 교회 초창기와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켰다. 그는 “한국 교회가 100년 후 한국의 변화상을 그리면서 새로운 미션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나 역시 목회를 하면서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제부터라도 한국 교회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WCC 부산 총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데 대해서도 조목조목 따졌다. 그는 “6·25 당시 WCC 국제위원회가 중공군의 참전을 침략으로 규정했다”며 ‘WCC=용공’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정교회의 WCC 가입으로 삼위일체 신학이 약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교회는 삼위일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파”라고 밝혔다. 그는 “WCC를 비판하는 학자들 중엔 WCC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고민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며 “국내 인사들의 WCC 비판은 너무나 레벨이 낮다”고 주장했다.
WCC 등 에큐메니컬 단체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즘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원에는 개인의 죄를 용서받고 천국 가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를 본래대로 회복한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 구원의 영역은 확대돼야 한다.”
이 같은 믿음은 그를 30년 넘도록 에큐메니컬 진영에 몸담게 했고, 여든이 넘도록 그를 시민단체에 묶어두고 있다.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던 그 마음 그대로 나는 지금 시민단체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고 있다”며 “혹자는 나를 변했다고 하지만 변한 건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됐을 때 간사들에게 했던 첫마디도 “시민운동에도 영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영성은 종교와 다릅니다. 이념과 철학을 넘어선 신비스런 신앙세계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그것 없이는 시민운동을 하지 말라고 도전한 거죠.”
그는 “지난 10년간 아름다운재단에서의 내 역할은 실패였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이유인즉슨 한국과 가장 가까운 아시아를 향해 물질의 기부는 확산됐지만 기부자의 마음속에 아시아가 형성되거나 아시아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기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만큼 한국은 배타적인 나라”라며 “한국인의 마음속에 ‘전 인류’가 들어서기에는 아직 먼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를 오랜 기간 취재한 국민일보 정치부 강주화 기자가 최근 ‘박상증과 에큐메니컬 운동’(삼인)을 펴냈다. 박 목사의 역동적인 개인사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사가 담겨 있다.
글=김성원 기자, 사진=이동희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