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설교·칼럼 표절 잇따라… 양심 불감증 만연
입력 2010-05-21 17:33
A목사는 최근 한 신문에 칼럼을 게재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르던 애완동물이 죽어 있었다는 내용은 누가 봐도 A목사의 경험담이었다. 그런데 한 월간지 최신호엔 A목사와 똑같은 경험담이 B시인의 이름으로 돼 있었다. 알고 보니 A목사가 B시인의 글을 표현만 조금 바꾼 채 자신의 경험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A목사는 최근 신문 칼럼에서도 7개월 전에 게재했던 신문 칼럼 중 예화의 표현을 살짝 바꿔 다시 게재하기도 했다. A목사는 베스트셀러 저자이며 설교와 칼럼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목회자다.
C목사는 D목사가 한 신문에 게재했던 칼럼을 최근 자신의 설교문에 그대로 게재했다. 도입과 본문, 예화 등 D목사 칼럼의 약 80%를 마치 자신의 설교문처럼 쓴 것이다. 설교문과 자신의 칼럼이 비슷하다고 여긴 D목사가 신문사에 제보해 알려지게 됐다. 처음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던 C목사는 결국 D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죄를 했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목회자들의 설교나 칼럼 등의 표절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2001년 수도권 교역자 3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35%인 128명이 “타인의 설교를 자주 혹은 적극 참고한다”고 답했다. “타인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교역자는 5명(1.4%)이었다. 하지만 ‘설교 표절’을 부정행위로 보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전적인 부정행위’라는 응답은 34%(127명)이었고, 나머지는 ‘부정행위로 볼 수 없다’(13%)거나 ‘부분적으로만 부정행위라는 데 동의한다’(38%)고 답했다.
한국설교학회장 정인교(서울신대 설교학) 교수는 “설교 표절은 당장의 물질적 이익을 전제하지는 않더라도 소유자의 허락 없이 쓰는 것이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지적 절도’라고 할 수 있다”며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맡은 설교자로서의 본분을 유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목회자들이 1주일 평균 10번 이상 설교를 하는 등 과중한 설교의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새벽예배 설교를 큐티식으로 하거나 주일 오후예배 설교를 강연 중심의 디다케(교육)식으로 하는 등 설교 방법을 다양화함으로써 설교 횟수를 줄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설교의 부담감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성원 기자